[사설] 조례안 베끼는 기초의원, ‘풀뿌리 선량’ 자질 함양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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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가 올해로 서른 살이 되었다. 공자가 의 위정편에서 ‘이립(而立)’이라고 일컫는 서른 살은 학문의 기초를 확고하게 세워 성과를 이루는 나이로 여겨진다. 안타깝게도 부산의 기초의회는 나이만 먹었지 아직 성년으로서의 행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역 주민을 위한 맞춤형 조례가 드물게 입법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대부분 다른 기초지자체 조례를 관례적으로 베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지역 특색을 고려하지 않는 선언적 내용이거나 사업 범위가 모호한 조례를 대놓고 베끼기만 해서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될 리 만무하다.

100개 중 93개 타 지자체 조례 모방
지역 특색에 맞는 입법 기대 어려워

부산 지역 내에서도 구·군마다 처한 사정이나 특색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부산 16개 지자체의 조례 총 4393개 가운데 지자체 한 곳에만 있는 ‘고유조례’는 310개로 7.1%에 불과했다. 100개의 조례 중 93개가 다른 지자체 조례를 모방한 ‘중복조례’라는 이야기다. 조례를 많이 발의한다고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었다. 중복조례만 가지고는 주민들이 지역 특색에 맞는 입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 부산의 지자체에 허다한 ‘관광진흥조례’, ‘재능기부 활성화 조례’, ‘한복 입기 활성화 운영 조례’가 있으나 마나 한 이유다. 집행된 적도 없는 조례가 수두룩하고, 어설프게 제정한 뒤 추후 개정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기초의원들이 선언적 조례만 양산한다면 밥값을 하지 못하면서 아까운 혈세만 낭비하는 셈이다.

주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지역 맞춤형 조례 제정에 힘써야 한다. 국내 유일의 헌책방 거리가 있는 부산 중구가 보수동 책방골목을 살리기 위해 2018년에 제정한 ‘지역 서점 활성화 및 지원 조례’가 좋은 예다. 또 주한미군이 부산항 8부두에 있는 기지를 통해 생화학물질을 반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남구 주민들은 크게 우려했다. 남구 의회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7년 ‘주한미군 기지 환경 사고 예방 및 관리 조례’ 제정은 큰 박수로 이어졌다. 이처럼 많은 주민들이 혜택을 받는 조례 입법이 의원 업무의 일순위가 되어야 한다.

기초의원들은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입법 지원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입법 활동을 돕는 전문위원의 수가 부족하고,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이 많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전문위원 규모를 확충하는 등 입법 전문성을 높여줄 다양한 보완책이 나와야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의원들 스스로 역량을 키우려는 노력이다. 최일선에서 주민들과 대면해 일하는 기초의원은 준비된 역량이 필요하다. 개인 역량이 준비된 사람이 기초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기초자치단체에서 시작된 무상급식은 보편 복지 논의에 불을 지피면서 대한민국을 변화시켰다. 지방의회 30년을 맞아 지방자치제도도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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