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취임 백일에 즈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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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사회부장

지난달 23일 마감이 임박해 현장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편집이 끝난 기사를 좀 고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8명까지 사적 모임을 시범 허용한다는 1면 글에서, 부산시 부시장 멘트를 박형준 시장 것으로 바꿔달라는 게 요지였다. 부산시 정무라인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노력이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여기에서 ‘노력’이란 8인까지 점심 모임을 허용해 달라고 5월 14일 정부에 ‘건의’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황당했다. 방역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보다는 작은 것에 재빠른 느낌이랄까. 잠시나마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했던 것은 힘든 시간을 잘 버텨준 시민들 덕분이다. 게다가 당시 박 시장은 엑스포 일로 파리 출장 중이었다. 기사는 수정 없이 나갔다. 공교롭게도 방역 완화 2주 뒤 4차 대유행이 왔다. 섣부른 조치에 대한 비판이 거센데, 과연 정부 탓만 할 수 있을까? 또 하는 일에 비해 박 시장 홍보가 덜 됐을까?

광역지자체장 평가 전국 상위권 차지
‘평가’보다는 새 시장에 대한 ‘기대’

방역 혼선, 이건희 기증관 좌절 등
홍보보다는 책임성 있는 노력 절실

여권은 무능·불공정 늪에서 허우적
검증 견디고, 자체 능력 증명해야

하루 뒤 부산일보에서 노조 공정보도위원회가 열렸다. 젊은 기자들로 구성된 기구인데, 두어 달에 한 번씩 신문제작 간부들과 보도 전반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번 회의에서 1호 안건이 박 시장 관련 보도였다. 시장 취임 이후 달라진 모습 등을 전하는 기사들에 대해 공보위는 ‘민망하다’고 지적하기까지 했다. 새 시장 취임을 감안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지나치다는 것이다. 전임 시장이 불미스럽게 그만뒀고, 공백 기간이 길었으며, 전문관료 출신이 아닌 영향 등이 있었을 것이라는 반박이 있었다. 이유와 평가가 어떻든, 박 시장에 대한 보도가 적은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올 5~7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내놓은 월별 광역지자체장 평가를 한번 보자. 응답자의 절반이 박형준 부산시장이 ‘잘한다’고 답했다. 전국 3~4위다. 선거 특표율(62.7%)보다는 못하긴 해도 뒤에서 버둥거렸던 선배 시장들이 보면 시샘 날 정도다. 하지만 보궐선거가 올 4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일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기대’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옳다. 여기에 착시 요소까지 보태진다.

박 시장은 지난주 취임 백일을 맞았다. 인수위도 없이, 1년 넘는 시장 공백 상황을 추스르느라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런 점을 언론에서도 배려했다. 이른바 ‘허니문’이다. 비판보다는 격려를 많이 한 것이다. 그 배려를 달리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요즈마 펀드 투자 유치 논란, 무리한 부산시 조직 개편, KT농구단 연고지 이전, 부산외대 부지 민간 매각 등 더 비판받을 일이 있었다. 이건희 기증관 문제도 기본적으로 정부가 잘못하고 있지만, 박 시장이 정부에 ‘건의’한 것 말고 뭘 했는지 냉정히 따져볼 일이다. 사람과 정책은 비판을 통해 단련된다. 앞으로 박 시장은 비판에 더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부산에서 큰 현안이 가덕신공항과 2030부산월드엑스포다. 부산 비상의 양 날개다. 특히 엑스포는 부산시 역량을 올인하고,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치적 이유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 박 시장 역할이다. 한편으로 조심스레 걱정도 된다. 코로나19 방역 혼선, 이건희 기증관 논란에서 보듯 박 시장이 행여 엑스포를 ‘안 돼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정부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결과다. 자잘한 홍보보다는 진정성을 갖고 능력을 쏟아야 한다.

허니문은 끝났다. 부산시의회는 박 시장 1호 공약인 어반루프 예산 1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불요불급한 사업에 대한 정당한 조치일지, 여당의 발목 잡기일지 시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시민단체도 비판 수위를 높인다. 박 시장에게는 유예된 검증의 시간도 기다린다. 박 시장이 청와대에 있었던 MB정부 때 국정원의 4대강 반대 민간인 사찰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엘시티 집 매각, 땅 투기를 비롯한 여러 의혹도 정리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여전히 찜찜하다.

지난달 29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앞으로 2심, 3심 때도 부산시민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그럴수록 박 시장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다. 여권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다. 공정과 부동산의 늪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 위선·무능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박 시장은 야당 시장으로서 ‘여당 복’을 누리는 셈이다. 그러나 민심은 언제든 요동칠 수 있는 법. 중요한 것은 박 시장이 자체 경쟁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다. 발광체냐, 반사체냐. 이 비유는 범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뿐만 아니라 박형준에게도 적용해볼 만하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내년에 치러진다. 복잡한 정치적 함수 속에서 박 시장이 능력도 보여주고, 검증도 버텨낼지 기대된다.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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