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수도권은 블랙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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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세상의 모든 것들(만유·萬有)은 서로 당기고 당겨진다(인력·引力). 이는 모든 물질의 고유한 양인 물질량(物質量, mass) 때문이다. 흔히 ‘무게’와 혼동하는데, ‘무게’는 얼마나 무겁게(중·重) 느껴지는지를 가늠하는 힘(력·力)이다. 무엇인가를 움직이려 할 때,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지구와 그 물체 간에 서로 당기는 힘, 만유인력 때문이다. 그래서 만유인력과 중력은 같은 현상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 어려웠던 것도, 걷기 위해서 다리에 힘을 주어야 하는 것도 모두 지구가 나를 당기는 중력 때문이다. 중력이 굉장히 커지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데, 그래서 아무런 빛도 방출되지 않는, 하늘에 뚫린 ‘검은 구멍’이라는 이름의 천체가 블랙홀이다.

온갖 좋은 것은 다 빨아들이는 수도권
원전 같은 혐오시설은 밖으로 토해 내
과도한 집중은 나라가 나서서 막아야

현대물리학에 의하면, 에너지가 물질(그리고 반물질)로 바뀌면서 탄생(빅뱅)한 시공간인 우주는 팽창하면서 냉각된다. 방대한 공간으로 퍼진 원자와 원자가 만나서 분자를 이루고, 먼지처럼 뭉치면서 미세한 질량 차이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부터 비로소 중력의 영향이 시작된다. 중력에 의해, 먼지 덩어리들은 조금이라도 가까운 큰 질량 쪽으로 뭉쳐지고, 걷잡을 수 없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특히 먼지 덩어리들이 뭉쳐질수록, 그 한가운데는 점점 더 단단해져서 압력도 온도도 올라가게 된다.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최종적으로 안정적인 핵융합에 도달하게 되면, 거대한 먼지 덩어리는 드디어 스스로 빛을 발하는 천체인 별(항성·恒星, star)이 된다. 생성 당시 그 별의 질량과 크기에 따라, 별들은 제각기 다른 운명을 겪게 된다. 질량이 충분히 커서 지속적인 수축의 결과 중성자별을 넘어 블랙홀까지의 진화가 가능할 것인지, 아니면 중간 단계에서 수축을 멈춘 먼지 덩어리, 백색왜성으로 남을 것인지가 결정된다.

이론적으로만 존재가 예견됐던 블랙홀이 실제로 발견된 것은 약 반세기 전이다. 당초 직접적으로는 관측될 수 없는 숙명을 지녔기 때문에 블랙홀은 단지 간접적인 방증으로만 추측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던 위치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엑스선이 발견됐던 것이다. 즉, 블랙홀은 검지 않았다. 블랙홀은 단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중력을 가질 뿐 아니라, 지속해서 수축하고 있어서 중력이 더욱더 강해지는데, 이 강한 중력 때문에 주위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킨다. 엄청난 질량들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빨아들임 현상 때문에 역설적으로 엄청난 방사선을 방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론에 대한 세계적인 전문가가 스티븐 호킹 박사다. 수년 전 인류를 열광시켰던 중력파의 발견 또한 두 블랙홀의 병합 과정에서 관측된 새로운 결과물이다. 블랙홀은 별과 물질의 최종적 진화 과정이라는 면에서 이론적으로 또 실험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새로운 미지의 영역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어떤 빛나는 것들도,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모든 것들도 궁극적으로 해체되어 소멸하는 곳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새삼 무더운 여름날 블랙홀 얘기를 꺼내는 것은, 문득 우리나라의 수도권이 블랙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전체가 인구절벽을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돈, 문화, 교육을 비롯한 거의 모든 것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집어삼키고 있다. K-바이오 랩 허브(한국형 생명-의료-연구 특화단지), 이건희 미술관, 광역철도 등 온갖 새로운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한편으로는 초고밀도의 집중 탓에 코로나는 자연스럽게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렇게 청정하고 안전하다는 원전을 비롯한 온갖 혐오시설은 모두 바깥으로만 토해 내고 있다. 지역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도입된 고속철과 사통팔달 신설되는 고속도로도 수도권의 집중과 확대만 낳고 있을 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 정책마저도 삼켜 버린 블랙홀 수도권 뒤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난 서울 토박이였다. 이북 출신 부모님 슬하에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때까지 여행으로조차도 거의 서울을 떠난 적이 없다. 해외 유학을 거쳐 처음으로 부산에 와서야 깨달은 건, 내가 이제까지 서울공화국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산과 강과 바다, 도심과 자연과 사람이 자연스레 어울려 있는, 참으로 근사한 도시 부산에 살면서 그 매력에 푹 빠져 버린 지 어언 20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천정부지의 집값에도 불구하고 어이없이 서울로만 몰려가는 사람들과, 아무리 애를 써도 그만큼 나아지기는커녕 가만히 있어도 2등 국민으로 전락해 가는 것을 보는 일은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도 못하게 하는 마당에, 수도권이든 어디든 과도한 집중은 나라가 나서서 막아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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