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코로나 속 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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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의 7~8%를 차지한다. 산소와 영양분을 신체 각 조직으로 나르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며, 세균이나 이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피를 말함이다. 하지만 그런 무미한 분석만으론 피가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인공으로 만들 수 없는 피는 신비하고 신성하다. 옛사람들은 각별한 맹세를 할 때 피로써 다짐했고, 위독한 부모를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흘린 피를 입에 넣어 드렸다. 중세 유럽에서는 어느 왕이 젊어지려고 소년의 피를 마셨다는, 으스스한 얘기도 전해진다. 무엇보다, 예수는 자신이 흘린 피로 ‘모든 이’와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었다.

피를 남과 나누는 행위는 그래서 고귀하다. 헌혈(獻血)은 단순히 피를 주는 게 아니다. 헌(獻)은 ‘바치다’ ‘올리다’의 뜻으로 지극히 높여서 하는 말이다. 국제적십자연맹이 1936년 파리에서 열린 이사회를 통해 처음 헌혈 사업을 도입했을 때 ‘박애와 인도주의 정신에 기초를 두고 무상으로 시행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반면에, 돈을 받고 자신의 피를 파는 매혈(賣血)은 천하고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세계적으로 금기시됐고,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 혈액관리법이 제정돼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순수한 의미의 헌혈은 1920년대 초 영국에서 적십자사 중심의 헌혈자 모임이 조직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헌혈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됐고, 국제적십자연맹이 1974년을 ‘세계 헌혈의 해’로 선포함으로써 헌혈 운동은 온 세계로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헌혈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으나, 헌혈에 대한 인식이 민간에까지 확산하게 된 계기는 1960년 4·19 혁명이었다. 이승만 독재에 항의하다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속출하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헌혈에 나섰던 것이다. 헌혈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요즘 피가 부족한 상황이 심각하다고 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전국적으로 5일 동안 쓸 수 있는 혈액량을 매일 보유해야 하는데, 올 상반기에는 그렇게 관리된 날이 닷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코로나19가 두려워 학교나 공공기관의 단체 헌혈이 급감한 때문이란다. 창궐한 질병이 인류의 고귀한 헌혈 정신까지 갉아먹는 것 같아 씁쓸하다. 보다 못한 부산혈액원이 오는 30일까지 ‘헌혈 릴레이 캠페인’을 벌인다 하니 적극 참여할 일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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