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볕 피할 길 없는 야외 일터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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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철거 현장서 일해 보니

지난 23일 기자가 찾아간 해운대구 중동 철거 공사현장은 폭염주의보 속에서도 작업이 한창이었다. 비산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어도 안전모 아래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기자님, 취재하시려면 복장부터 제대로 갖춰 오셔야죠.”

지난 23일 오전 9시 부산 해운대구 중동 건물 철거현장에서 심재극 현장소장은 기자를 이렇게 나무랐다. 철거 현장에 반팔옷을 입고 온 철부지 기자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심 소장은 “철거현장에서는 돌멩이나 나뭇조각 같은 게 튈 수 있어서 긴팔 옷을 입거나 적어도 토시 정도는 필수로 챙겨 오셔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소장을 따라가자 그는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심 소장은 잠깐 일하는 것이지만 근로계약은 의무라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안전모, 안전화, 방진마스크를 지급했다.

머리 위로 햇빛 내리꽂히는 느낌
안전모·마스크 안으로 ‘땀 줄줄’
최근 5년간 ‘온열 산재’ 26명 사망
사업장 ‘휴식·물·그늘’ 준수해야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자는 아침 조회에 참여했다. 연륜이 물씬 풍기는 근로자들과 잠깐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해당 공사장은 해운대구 중동의 건물 철거 현장이었다. 해운대구청은 오는 11월까지 이곳에 도로를 낼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오전 9시의 기온은 28도에 달했다. 부산에서는 지난 19일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높은 온도에 습도까지 높아 햇빛이 바로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느낌이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안전모, 안전화, 방진마스크 등 안전장구 안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새로 꺼내 입은 옷은 어느새 축축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기자에게 처음 맡겨진 임무는 도로통제였다. 주변 차량의 진입을 막고 시민들이 공사장으로 진입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작업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뜨거운 날씨가 더 뜨겁게 느껴졌다. 시간도 다른 때보다 천천히 가는 듯했다.

15년째 철거 현장에서 일한다는 차영숙(62) 씨는 “여름이 1년 중 가장 힘든 계절”이라고 했다. 안전한 공사를 위해서는 차량과 보행자의 진입을 막는 도로 통제를 해야 하는데 햇볕이 내리쬐는 길가에서 하루종일 서 있는 것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차 씨는 “도로 공사를 하면 차도 막아야 하고 시비도 가끔 생긴다”면서 “봄이나 가을 같을 때는 괜찮은데 여름에는 계속 땡볕에 서 있어야 해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가다(일)가 뭐 다 그렇지”라고 푸념했다.

기자는 도로 통제를 뒤로한 채 비산먼지를 제거하는 작업자에게로 이동했다. 어느덧 날씨는 점점 더워져 체감온도는 32도에 육박했지만 작업자는 더운 날씨 속에서 굴착기를 따라다니며 연신 물을 뿌려 대고 있었다. 굴착기가 건물을 철거할 때 먼지가 발생하는데, 이때 물을 뿌려 비산먼지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더운 날씨에 물을 뿌리고 있어 조금 편해 보였지만 직접 해 보니 전혀 아니었다. 호스가 꽤 길고 무거울 뿐만 아니라 굴착기가 작업하는 동선을 계속 따라다녀야 해 잠시도 한눈을 팔 틈이 없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면 “물 좀 제대로 뿌려 달라”는 무전이 내려왔다. 호스를 들고 졸졸 따라다니다 보니 땀이 비오는 듯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온열질환 산재피해자는 156명에 달했다. 이 중 사망자는 26명이었다. 폭염으로 인한 산재는 옥외 작업을 주로 하는 건설업(76명)에서 가장 잦았다. 현장에서는 규정을 따르지 않는 사업장이 많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안전보건규칙에는 휴식에 대한 규정 등이 명시돼 있지만 작업 환경에 따라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곳도 많다는 설명이다. 기자가 찾은 현장에서는 얼음물 등이 상시로 비치되어 있고 작업자들은 휴식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그늘에서 쉴 수 있었다. 심 현장소장은 “현행 법에서는 폭염을 대비해 지켜야 할 안전 수칙들이 충분히 규정돼 있다”며 “현장에서 규정만 잘 지켜도 온열 산재는 99% 예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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