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관의 남북 시선] 남북 통신선 연결과 ‘퍼미션 투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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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지난달 초, 청와대 한 관계자의 유튜브 매체 인터뷰가 참 놀라웠다. G7과 오스트리아, 스페인 정상회담에서 거둔 상당한 성과를 알게 돼 흥미로웠지만, 또 언제 다른 정상회담이 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그거는 말할 수가 없죠”라고 말한 대목이 이목을 끌었다.

물론 확정되지 않은 정상회담을 공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는 9월 유엔총회 참석 등 대략 공개해도 될 만한 것들을 준비 중이라고 하면 그만일 텐데, 긴장한 듯 대답을 안 할 이유가 있었을까? 혹시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남북관계에 어떠한 변화의 조짐도 알려진 바 없어서 상상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13개월 만에 끊겼던 대화 통로 복원
양 정상 간 수차례 친서 등 물밑 소통
 
한·미 간 공감 속에 이뤄져 더 큰 의미
북한도 당면 현안 타개 위해 나선 듯
 
남북의 다음 행보에 안팎 관심 고조
남·북·미 함께 춤 즐기는 한반도 기대

그런데 휴전협정 체결일인 지난달 27일, 13개월 동안 끊어졌던 남북 통신선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섣부른 예상일 수 있다. 그런데도 정상회담 계획을 사전에 검토했을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반가운 것은 지난해 6월 북한이 남북관계를 ‘대적 관계’로 돌리면서 통신선을 모두 끊었는데, 이것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대적 관계를 중단하겠다는 뜻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10여 차례나 친서가 오갔다고 한다. 며칠 전 국정원장은 국회 보고에서 통신선 복원은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도 놀랍다.

모든 전문가가 동의하는 것이지만, 통신선 연결만을 위해 서신을 주고받았을 리는 없을 것이다. 남북의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시차를 두고 생각해 보면, 미국과 협의 속에 이런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남북 정상은 4월부터 친서를 주고받았으며, 5월 21일엔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미 공동선언에서 “남북대화와 관여를 지지한다”라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말은 그저 추상 수준의 지지가 아니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 국무부 성김 대북정책대표의 서울 방문과 지난달 말 웬디 셔면 부장관의 서울 방문 모두 이해되는 행보였다.

당시 셔먼 부장관이 청와대에서 했다는 숨은 얘기가 있다.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세계적인 보이밴드 BTS의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를 언급하면서 “한국과 미국은 함께 호흡을 맞춰 왔기 때문에” Permission, 즉 ‘승낙’이 필요 없다고 했다. 대단히 우호적인 발언이다. 특히 과거 우리 정부의 역사 문제에 대해 반발하며 친일 발언을 했던 인사라는 점에서도 더 놀랍게 다가왔다.

통신선 연결은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간 공감 속에 남북문제를 풀어 가고 있다는 것은 상당한 추진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한에도 미국과 대화를 이어 가는 것은 당면한 문제를 타개하는 열쇠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난해부터 북한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 제재와 코로나19 그리고 자연재해로 지난해 북한 경제는 마이너스 4.5%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 요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시급한 국내 현안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올 1월에 8차 당 대회를 개최했지만, 연일 경제 성과와 방향에 대한 집회와 토의가 이어지고 있다. 또 ‘중앙당 일꾼들’은 논밭에서 생산 증대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은 워싱턴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에게 북측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며, 바이든 대통령도 적절한 수준에서 공감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북한이 얼마나 비핵화 의지를 보였는지, 미국이 어떤 수준에서 제재 해제와 북·미 관계 개선에 동의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대화 창구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남북대화의 창구는 북·미 대화의 통로 역할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통신선 중 하나는 청와대와 평양의 국무위원장 집무실 간 핫라인도 포함된다.

며칠 전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때 이른 경솔한 판단이라 생각한다”라며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올 3월 담화와 비교하면 매우 완곡하고 부드러워졌다. 북한도 지금의 ‘모멘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아무튼 정상회담 개최 전망은 때 이를지 모르나, 때가 된다면 가능하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거는 말할 수가 없죠”라는 것이 성사되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곧 왔으면 한다. 남·북·미 모두에게 ‘퍼미션’ 없이도 함께 댄스를 즐길 수 있는 한반도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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