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세’ 코앞인데… 부산 기업들 막막하거나 깜깜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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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세, 그게 뭔가요?” “저희한테도 영향이 있나요? 아직 체감이 안 돼요.” “들어는 봤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죠?”

세계 무역 질서에 ‘탄소국경세’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하지만 부산 기업들 상당수는 이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몰라 막막해하고 있어 적극적인 로드맵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품 배출 탄소량 따져 관세 부과
EU 시행 예고 이어 미국도 논의
지역 철강 수출업계 타격 클 듯
“정부가 나서서 로드맵 마련해야”

탄소국경세는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따져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EU(유럽연합)가 지난달 14일 ‘핏 포 55(Fit For 55)’ 패키지를 발표하며 탄소국경세 본격 시행을 예고했다.

이날 EU는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도입 결의문을 발표하며, 2023년부터 유럽 역외산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비료 등 5개 분야에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3년간 잠정적용기간을 거쳐 2026년 본격 시행한다. 이에 따라 국내 수출기업들에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석탄 발전의 비중이 40%에 달하고 수출 의존도도 38%에 이르기 때문이다. 산업부도 5개 분야 중 특히 철강업계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우려했다.

당장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탄소국경세 도입 시 국내 철강업계가 부담해야 할 탄소국경세가 연간 3390억 원에 이를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고, EU에 “한국은 탄소국경세 적용을 면제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EU뿐만 아니라 미국도 탄소국경세 논의를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EU의 탄소국경세 시행 발표가 있었던 날 미국에서도 탄소국경세 법안이 발의됐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출범 이후 줄곧 기후 위기 대응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시행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EU와 미국의 결정은 다른 나라들의 탄소세 도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부산 기업들의 경우 대EU 철강 수출액 비중이 크게 높지 않다며 아직 다급해하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부산지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부산의 철강 수출액은 15억 9105만 달러로, 이 중 대EU(27개국) 철강 수출액은 1억 9451만 달러(12.23%)에 해당된다. 하지만 여기에 미국까지 포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 상반기 부산 철강 수출 국가 1위가 미국으로, 대미 철강 수출액은 2억 1441만 달러에 이른다. 둘을 합하면 25.7%에 이른다. 2위는 일본, 3위가 멕시코, 4위가 중국이다.

부산의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철강 원자재 값이 오르고 각종 수출규제 등으로 힘든 상황인데 탄소국경세까지 부담해야 한다면 업계를 떠나는 기업이 더 많아질 것 같다”면서 “지금도 이미 철강 쪽 업체들이 많이 떠나고 있고, 그 자리에는 다른 기업들이 들어온다”고 허탈해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탄소국경세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는데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서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 유예기간이나 예외국가 적용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국제 무역 질서의 흐름을 직시하고, 정부에게 로드맵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경대 국제통상학부 나희량 교수는 “어떻게 보면 지금 준비를 시작해도 이미 늦은 감이 있다”면서 “대기업들의 경우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나서서 전문가들과 함께 재정 부분을 포함한 정확한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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