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공간 읽기] 영도 복합문화공간 ‘아레아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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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한 배려·양보, 매력적인 골목 문화 만들어 내다

단시간에 부산의 ‘핫플레이스(hot place)’가 된 아레아식스. 삼진어묵 영도 본점을 지나 영도 봉래시장으로 가는 한쪽 샛길에서 만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아레아식스를 위에서 본 모습(왼쪽)과 아레아식스 2층에 진열된 WSL 가죽 원단. 윤태훈 제공

부산 영도에 가면 거리에 활력을 붙어 넣는 작은 공간이 있다. 부산어묵으로 유명한 삼진어묵 영도 본점 옆 복합문화공간 ‘아레아식스’(AREA6·부산 영도구 봉래동)다. 단시간에 부산의 ‘핫플레이스(hot place) 중 한 곳이 된 곳이다. 삼진어묵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영도 봉래시장으로 가는 한쪽 샛길에서 만날 수 있다. 3층짜리 건물 속에 소박한 가게와 소박한 길이 나 있다. “아~ 단일 건물이라도 얼마든지 이렇게 골목길을 만들어 낼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내어줌’, ‘틔워줌’ 같은 단어가 생각난다. 작지만 큰 울림,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을 일깨우며 아레아식스는 지루한 거리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촉매제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

건물 앉음새, 주변 환경과 보조 맞춰
내어 주고 틔워 주고 높이 욕망 버려
3층짜리 건물 속엔 소박한 가게와 길
길 틔운 1층은 인근 골목길과 연결돼
아기자기한 8개 상점엔 호기심 ‘충만’
지역 브랜드들 결속·상생으로 이끌어


보조를 맞추다

아레아식스 건물 설계는 오승태(건축사사무소 가가호호 대표) 건축사가 했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 건물 외벽은 콘크리트를 치핑(Chipping·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접합 면의 표면을 정이나 끌로 거칠게 마무리하는 것)했다. 오 건축사는 “원래 있던 집의 거친 벽면 질감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새 건물임에도 기존 골목길과 건물 배치를 그대로 살려낸 듯, 건물 앉음새가 주변 환경과 이질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새로 지었다기보다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세련된 건물이 아닌 익숙함이랄까. 컬러를 뺀 무채색 벽면, 치핑이 주는 질감으로 인해 세월의 묻어남이 주변 건물과 보조를 맞추는 느낌이다.

건축주는 삼진어묵이다. 건물 기획, 인테리어, MD(상품 기획), 콘셉트 등은 삼신어묵의 비영리법인 삼진이음의 홍순연(건축사) 이사가 진행했다. 아레아식스는 지난해 11월 준공해 올해 2월 오픈했다.

아레아는 영어로 Area로 흔히 ‘지방’이나 ‘지역’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의미가 확장되면 ‘광장’ 혹은 ‘열린 공간(Open Space)’이라는 개념도 갖는다. 이 말에서 아레아식스의 방향성을 읽어낼 수 있다. 정리하면 아레아는 ‘로컬을 밝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다. 1, 2층에는 지역 상품이 입점해 있고, 1층 중정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길을 내어주고 틔워주고 있으니, 이름이 이 건물의 콘셉트를 정확하게 말해준다.

그렇다면 식스(6)의 의미는 뭘까? 아레아식스가 있기 전, 작은 집 6채가 있었다. 6은 그 흔적인 셈이다. 삼진어묵 홍 이사는 “도시재생 차원에서 당초 이 건물 일부를 살리려고 했으나 못했다”고 설명했다.



길을 틔우다

대지면적 150평 아레아식스엔 최대 18층 규모의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건축주는 애초 기존 건물 높이의 볼륨감을 유지했다. 건축주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높이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눈높이를 함께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건물은 말할 것도 없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게 같은 눈높이를 가져가는 것이다. 눈높이를 같이 한다는 것은 봉래시장 등 주변 환경과 보조를 맞춘다는 얘기다. 이는 상생, 소통으로 가는 길이다. 이런 마음 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건물 1층에 길을 틔워 자연스럽게 골목길을 품에 안은 건물이 됐다. 건물은 1층 중정을 중심으로 교차로처럼 길을 열어 주었다. 오 건축사는 “건물 구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입하는 동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젠 중정은 주민 사랑방 같은 쉼터가 됐을 정도다.

건물 안과 밖은 모두 중정으로 통한다. 길은 본래부터 골목길이 있었던 듯 자연스럽다. 건물 밖 입구에서 골목 사이로 중정을 바라보면 이국적이다. 빨려 들어갈 듯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골목과 새로운 가게를 만난다.

건물 1층을 상업 공간으로 모두 채웠다면, 지금의 골목은 없었을 길이다. 시장으로 가고 싶다면 건물 옆길로 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아레아식스는 기꺼이 그 길을 내주었다. 어쩌면 주민에 맞춰 길이 만들어졌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골목은 지극히 서민적이다. 여기서도 다를 게 없다. 잠깐의 휴식을 취해도 좋다. 쉬어 가라고 벤치도 놓여 있다. 특히 저녁이면 음침하고 슬럼화 되어 있던 시장 골목길이 활기차게 변모했다. 아레아식스가 앵커가 돼 서로 다른 성격들의 공간을 엮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도시 비평가 제인 제이콥스(1916~2006)는 공동체 문화와 소상공인 산업을 발전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골목길에 주목한 바 있다.

홍 이사는 “삼진어묵 영도 본점 1층 건물 뒷문으로 나오면 아레아식스-봉래시장으로 쭉 이어지게 된다. 향후엔 삼진어묵-아레아식스 2층도 브리지로 연결, 고객 유입이 한층 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게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지역과 함께하다

아레아식스는 로컬(local)을 밝히는 ‘아티장 골목’을 표방한다. 아티장은 ‘Artist+장인(匠人)’을 뜻한다. 지역에서 뛰어난 장인 혹은 성장할 수 있는 장인들을 키워주는 인큐베이트 같은 곳. 제조 업체나 스타트업, 지역 소상공인 등 꾸준히 성장해 나갈 미래의 장인을 한데 모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1층에는 ‘희희호호’ ‘취 프로젝트’ ‘컬럼니스트’ ‘티가렛’ ‘인어아지매’ ‘부산주당’ ‘M마켓 편의점’ ‘송월타올’ 등 8개 상점이 둥지를 틀었다. 상점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입점한 브랜드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다. 아기자기함이 넘친다. 덕분에 중정에 서 있는 순간, 호기심처럼 자연스럽게 발길이 어느 방향으로 옮겨진다. 그래서 “여기는 뭐가 있나” 하며 기웃기웃 둘러보게 된다. 각각의 브랜드는 로컬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각 브랜드에서는 부산 에디션을 따로 준비해 놓았을 정도다. 특히 ‘송월타올’은 이곳이 전국 유일의 직영 매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산의 기준에서 보면 서울 역시 로컬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렇게 모여 있으니 대형 백화점 MD들이 와서 상품성을 눈여겨볼 정도다.

2층은 워킹(Co-Working) 스페이스로 가죽 원단을 판매하는 카페를 겸한 WSL라운지와 전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죽 원단들이 진열돼 있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볼 수도 있다. 1, 2층은 로컬을 밝히는 성지(聖地) 같다. 홍 이사는“ WSL까지 하면 로컬 브랜드가 9개, 여기에 삼진어묵까지 넣으면 10개다. 이는 지역 상품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다. 이들 로컬 브랜드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결속력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확장으로 이어진다. 이게 바로 시너지 효과다”라고 말했다. 물론 삼진어묵 영도 본점이 가진 매력을 지역 상권, 지역 브랜드와 연계해 되찾겠다는 의도도 들어있다.

3층은 세미나룸과 루프톱으로 구성돼 있다. 한쪽 벽면엔 치핑해 만든 영도 지도도 보인다.

중정에서는 영화, 공연, 마켓, 세미나도 열린다. 쉼터이면서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곳, 고정체지만 동시에 가변성이 있는 공간이다.

건물은 살아 숨 쉰다. 공간에 사람들이 채워지고, 골목길처럼 오고 가면서 그 공간은 다양함으로 풍부해진다.

아레아식스 주변 거리는 다른 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낡은 건물과 신축 건물들이 어우러져 골목의 다양함을 생성한다. 어느덧 아레아식스는 매력적인 골목 문화를 생산하며 이를 선도하고 있다. 고유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갖고 말이다.

“나 잘났지”라고 한껏 뽐내는 것이 아니라 “나 여기 있는데 좀 봐줘”하는 듯한 공간을 만났다. 공간이 우리의 삶과 함께한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공동 기획: 부산일보사·부산광역시건축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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