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느린 기차 다음 정차역은 시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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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애~액! 꽤~애~액!”

다른 곳에서는 듣기 어려운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시 후 검은색 증기기관차가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느릿느릿 철길을 따라 들어온다. 1960년대 풍경을 옮겨놓은 것 같은 플랫폼에서는 승객들이 환한 표정으로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전남 곡성의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세월 속으로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1999년 문 닫은 역사, 기차마을로 조성
증기기관차 시속 30~40㎞ 5차례 운행
창밖 내다보면 시간 멈춘 듯한 착각도
섬진강 따라 느긋하게 레일바이크 체험
도깨비 주제 요술랜드·생태학습관도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

섬진강 기차마을에 들어가려면 일제 강점기에 건설한 구 곡성역사를 지나야 한다. 구 곡성역사는 1933년에 만들어졌다. 이곳은 일제에 수탈당한 물자를 나르고, 전쟁이나 강제노역에 끌려간 한국 젊은이들을 실어 나른 아픈 역사를 간직한 역이다.

1999년 복선화 때문에 전라선이 이설되고 새 곡성역사가 생겨 구 곡성역사는 문을 닫았다. 곡성군은 구역사 일대를 사들여 섬진강기차마을로 바꾸었다. 2005년에는 증기기관차가 생겼다. 구 곡성역사는 2004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은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태극기 휘날리며’, ‘경성 스캔들’ 등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용됐다. 기차라는 특이한 주제를 담아 아기자기하게 마을을 꾸민 덕에 2015년과 2019년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입장권을 제출하고 구 곡성역사 입구를 나서는 순간 50~60년 전 과거 기차역으로 돌아간 느낌을 주는 장면이 펼쳐진다. 온통 검은색을 칠해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는 증기기관차 한 대가 서 있고, 그 뒤로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은 승강장이 세워져 있다.

기차마을에서 출발하는 증기기관차는 오전 9시 40분과 11시, 오후 1시 30분과 2시 50분, 4시 10분 등 모두 다섯 차례 운행한다. 목적지는 20km 정도 떨어진 가정역이다. 시속 30~40km 정도로 달리기 때문에 편도 운행에는 25~30분 정도 걸린다.

증기기관차는 섬진강과 국도 17호선을 따라 달린다. 봄에는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구간이라고 한다. 지금은 계절에 맞게 철로 주변에는 초가을 분위기가 조금씩 퍼지고 있다. 이 기차는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악기차처럼 수려하고 변화무쌍한 풍경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덜커덕거리는 의자에 엉덩이를 맡겨놓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는 신기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딱딱한 의자에 기대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40여 년 전 부산역~대구역, 또는 부산역~용산역을 오가던 비둘기호 열차의 추억이 떠오른다. 코로나19 탓에 다양한 군것질거리를 파는 손수레가 돌아다니지 않는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가정역에 내리면 섬진강레일바이크가 기다리고 있다. 섬진강을 따라 봉조반환점까지 왕복 3.6km 거리를 느긋하게 다녀오는 구간이다. 아직 무더위가 남아 있는데다가 평일 오후이어서인지 레일바이크 이용객은 거의 없다. 그래서 바퀴를 서둘러 돌릴 필요 없이 느긋하게 레일바이크를 이용할 수 있다. 마스크를 벗고 시골의 맑고 시원한 바람을 마시면서 가끔은 페달을 밟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물론 안전 문제를 생각해서 레일바이크에서 내리는 행동은 금물이다.

증기기관차는 가정역에서 20분 정도 머문 다음 구 곡성역사로 돌아간다. 레일바이크를 이용하려면 1시간 20분 뒤에 들어오는 다음 열차를 타고 원래 장소로 복귀하면 된다. 시간이 남는다면 가정역 바로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설치된 출렁다리에 가서 섬진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유를 부려도 된다. 눈을 꽤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풍경이 담겨 나오는 장소다.



■섬진강 기차마을

증기기관차를 타고 가정역에 다녀왔다면 이번에는 섬진강기차마을을 본격적으로 둘러볼 차례다. 이곳은 5월에 축제를 여는 장미공원과 생태학습관, 치치뿌뿌놀이터, 도깨비를 주제로 삼은 요술랜드체험장, 각종 놀이기구가 있는 드림랜드, 레일바이크와 미니기차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가족형 관광지다.

작은 캐리어를 끌고 온 가족이 레일바이크를 타고 있다. 젊은 부부와 이제 대여섯 살 정도 됐을 것 같은 딸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거나 깔깔 웃고 있다. 아빠는 장난을 치느라 레일바이크 페달을 한참이나 힘껏 밟더니 지쳤는지 혀를 쭉 내민다.

행복한 가족이 탄 레일바이크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기차마을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중앙광장의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작은 꽃잎이 무수히 모인 독특한 모양의 불두화로 둘러싸인 기차 모형인 치치뿌뿌놀이터 앞에서 어린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치치뿌뿌놀이터 뒤로는 긴 나무를 눕힌 모양을 한 요술랜드가 나타난다. 기차마을 인근 고달면에는 도깨비마을과 도깨비공원이 있다. 여기에는 도깨비살이라는 게 있다. 다른 말로 ‘독살’이라고 하는데 고기를 잡기 위해 강에 설치한 작은 둑이다. 조선 개국 공신인 마천목 장군이 도깨비들의 도움을 받아 독살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기차마을에 ‘도깨비 마을’이 생긴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광장 반대쪽에는 장미공원과 생태학습관이 있다. 내년 5월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화려한 장미의 향연을 즐길 수도 있겠다. 작은 연못 위에 설치된 소망정은 제법 멋진 사진 한 장을 찍어보기에 좋은 장소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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