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하지 않는 청렴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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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장

1950년, 박봉을 참다못한 한 판사가 대법원장실을 찾아 하소연하자, 대법원장은 나도 죽을 먹고 있으니 조금만 참고 고생하자고 했다. 추운 겨울에는 사무실의 난방을 틀지 않아 잉크병이 다 얼어버릴 지경이었다. 판사들은 대법원장에게 난방을 틀자고 건의했으나, 대법원장은 영하 5도가 되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다른 관청은 모두 품질 좋은 외제를 쓰는 데, 형편없는 수준의 국산품을 쓰는 것을 세상이 알아주겠느냐는 판사들의 한탄에 대법원장은 이렇게 호통을 쳤다.

“나라 찾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는지요? 나라의 녹을 먹는 우리가 아니면 우리 산업은 누가 키웁니까? 우리가 솔선수범해야지요.”

가인(街人) 김병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의 청렴 정신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들이다.

기업은 혁신을 추구하고, 직원들의 근로 풍토는 애사심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워라벨(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사회로 옮겨 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차별, 절대적인 상명하복과 같이 과거엔 당연시하던 좋지 않은 습관들도 현재는 불합리하다고 받아들여지며 변화하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와 상관없이 불변인 것들이 있다. 여러 세대 동안 사랑받는 고전문학은 인간의 삼라만상의 모습을 비추어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고, 다소 고리타분한 클래식 음악도 인간의 영혼을 맑게 치유한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도 영원하다. 변하지 않는 그 자체가 고귀한 것들이다.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말했던 공직자로서의 ‘청렴’도 이에 해당한다. ‘청렴’은 시대를 초월한 원칙이며, 융통성, 효율성, 시대성이 반영되지 않는다.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그 변화를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불변의 원칙 중 하나가 ‘청렴’인 것이다

앞의 일화에서 적당히 난방해 몸이 얼어붙지 않게 하고, 품질이 좋지 않은 국산보다 외제를 사용했더라면 그 당시 동안만은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떠한 특권을 누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업무를 조금 더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텐데, 굳이 저렇게까지 엄격하게 해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가인 김병로 선생이 지키고자 했던 청렴한 정신 그 자체이다. 이러한 정신이 없었다면, 70여 년이 지난 후의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청렴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청렴의 정의보다 신념에서 나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나의 행동이 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의 선택이 남과 사회에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지만 생각해보면 된다.

아직 우리 주변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리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혹 앞에 약해지기 마련이다. 정의롭지 못한 일들은 ‘인정’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오니, 자신이 하는 일을 늘 ‘청렴’의 잣대로 되돌아봐야 한다.

스스로 각자의 위치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할 때 우리 기업, 우리 사회 전체의 위상이 드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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