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카불, 건네받은 바구니엔 생후 20일 쌍둥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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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작전’ 참여 박경철 준위

지난달 26일 오후 4시 28분. 인천국제공항에 377명의 아프간인이 무사히 도착했다. 중간 기착지에 남았던 나머지 13명의 아프간인도 27일 모두 국내에 발을 디뎠다. 우리나라가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나섰을 때 대사관, 바그람 병원, 직업훈련원 등에서 수년간 협력했던 현지인과 그들의 가족이다. 공군은 ‘기적’이라는 뜻의 ‘미라클(miracle)’로 이름 붙여진 작전에 나섰고, 탈레반에게 함락된 카불에서 대규모 현지인 구출에 성공했다.

김해 제5공중기동비행단 소속
왕복 2만km 긴박한 장거리 작전
현지서 허락된 시간은 단 1시간
아기 엄마도 무사히 한국 도착
“감사합니다” 인사에 가슴 뭉클

이번 미라클 작전을 주도적으로 수행한 곳은 바로 김해공항에 주둔한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이다. 화물 적재 담당자(로드마스터) 겸 정비책임자인 제5공중기동비행단 소속 박경철 준위도 이번 작전에 투입돼 현지에서 구출 임무를 맡았다.

공군이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은 단 1시간. 박 준위와 다른 요원들은 파키스탄 한국 대사관 바닥에서 3~4시간 쪽잠을 잔 뒤, 지난달 24일 곧바로 임무에 투입됐다. 파키스탄을 떠나 카불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지 곳곳에 포탄이 떨어진 듯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언제 테러 단체의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박 준위는 당시 긴박하게 아프간인을 수송기에 탑승시키던 중 ‘쌍둥이 아기’와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아프간인을 급히 수송기로 안내하고 있는데 한 아프간 여성이 비행기에 탑승하며 도시락 가방 같은 바구니를 저에게 잠시 맡겼습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어보니 “베이비(baby)”라고 답했습니다. 깜짝 놀라 바구니를 살펴보니 실제로 생후 20여 일이 지난 쌍둥이가 있었습니다. 그분을 조금이나마 편한 자리로 안내했는데, 쌍둥이 아기와 함께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뿌듯함에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미라클 작전은 왕복 거리만 2만km가 넘는 유례없는 장거리 작전이었다. 적의 공습 등 어떤 비상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들의 피로도도 상당히 높았다. 현지 상황도 무척 열악했다. 박 준위는 “국내에서 출발할 때부터 현지에서 숙소 확보가 어려울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며 “35도가 넘어가는 궂은 날씨 속에 테러 관련 돌발상황을 대비하느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카불공항에서 파키스탄으로 탈출한 아프간인을 국내로 이송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현지에 급파된 수송기인 ‘KC-330’는 탑승 인원이 최대 300여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간인 대다수가 가족 단위라 아이와 동반을 원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수송기 한 대에 모두 탑승하기로 했다. 박 준위는 “현장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했지만 한 번에 이송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며 “요원들은 기꺼이 현지에서 개인 짐을 버리고 좌석을 아프간인에게 양보했다”고 전했다.

어려운 현지 상황 속 헌신적인 노력으로 임무에 성공했지만 박 준위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준위는 “임무를 부여받은 순간부터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일 만큼 많은 어려움이 예상됐다”며 “실제로 현지에서 매 순간 긴급하게 계획이 변경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요원들 모두 평소 준비한 대로 차분하게 대처한 덕에 무사히 임무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웃어 보였다.

“국내로 오는 수송기에서 한 아프간인 여성 분이 아이를 안은 채 물 한 병을 부탁했습니다. 그분에게 물을 건네니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답해 뭉클했습니다. 국내로 오는 아프간인 모두 눈빛에 희망이 차 있던 점이 인상 깊습니다. 이번 작전 성공에 박수를 보내 주신 국민들께 감사하고, 이들이 잘 정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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