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엔 ‘대항해 시대’, 중국엔 ‘대운하 시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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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시대/조영헌

는 밀도 높은 서술로 상당한 지적 자극을 주는 책이다. 중국사를 중심으로 세계사와 한국사가 걸쳐 있다. 핵심 주장은 유럽에 대항해 시대가 있었다면 중국에 대운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식민주의와 유럽 중심의 서사를 극복하려는 관점이다. 단순하게 중국이 문을 닫아걸고 쇠퇴해서 결국 유럽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아니다. 외려 15~18세기 명·청의 대운하 시대는 너무나 안정적이고 자족적이어서 굳이 해양 진출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유럽 대륙은 많은 나라들의 복잡한 각축에 의해 밖으로 진출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지만 중국은 하나의 충족한 나라를 이뤄 밖으로 진출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해양 진출 시도 여부는 실력 문제가 아니라 의지 문제이자 각 대륙의 조건 문제였다.

명·청나라, 너무 안정·자족적 시대여서
유럽과 달리 해양 진출 필요성 못 느껴
중국인에게 대운하는 지중해 같은 역할
中 ‘해금 정책’, 나중엔 잘못된 결과 불러

중국을 자족하게 만든 대운하는 수·당 시대부터 만든 것으로 북쪽 베이징에서 저장성 항저우까지 내륙 1800km를 잇는 수로다. 황하 회수 양쯔강과 연결돼 실제 온 중국을 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대운하 시대의 시작은 명나라 영락제 때인 1415년이다. 영락제는 쿠데타를 일으켜 조카를 내쫓고 황제가 됐는데 찬탈과 살육의 오명을 씻기 위해 수도를 남쪽의 난징에서 북쪽의 베이징으로 옮겼다. 풍부한 물산의 강남 난징을 뒤로하고 황량한 베이징으로 천도를 하는 대신 기존 운하를 재생해서 대운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대운하를 통해 북의 정치 중심지와 남의 경제 중심지를 연결시켰다. 이후 청 건륭제 때인 1784년까지 근 400년간 대운하는 대륙의 대동맥이었다. 중국인들에게 대운하는 유럽인들에게 지중해와 같은 역할을 했다.

중국이 성세를 누렸던 근 400년의 대운하 시대에 세계는 요동치고 있었다. 성세는 게으름을 나른하게 수반하는 것이고, 번영의 허상에 의해 파란만장함을 은폐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것이었다. 책은 8개의 장면을 통해 대운하 시대를 그리는데 대운하 시대가 시작된 1415년은 포르투갈이 지중해를 넘어 모로코의 세우타를 점령한 해였다고 한다. 대규모 함대를 이끈 정화의 인도양 개척을 지워버리면서 중국은 대륙 속의 대운하에 몰두해 들어갔던 것이다.

중국은 대운하에 몰두하면서 바다에 대해서는 철저히 금하는 ‘해금(海禁) 정책’을 고수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몽골이 있는 북쪽 방위에 신경을 써야 했고, 둘째는 예측 불가능한 바다를 무서워했다. 바다에 대한 두려움의 실체는 16세기 중엽 후기 왜구였다. 왜구가 그렇게 겁이 났던가. 왜구는 비옥한 강남 삼각주를 공략하는 것은 물론 남쪽 중심지 난징을 포위 압박할 정도였다. 일본 왜구는 30% 정도였고, 이에 호응한 중국 연해민이나 해상 세력이 70%나 되었으며 심지어 포르투갈인도 포함돼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16세기 왕직은 일본과 네트워크를 지닌 중국인 출신의 거물 왜구였다. 이른바 해상 세력이었다. 17세기 푸젠성 출신의 이단을 잇는 정씨 해상 세력도 대단했다. 정지룡-정성공-정경, 3대로 이어진 정씨는 동아시아 지중해에서 활약한 강력한 해상 세력이었다. 난징 공략에 실패하고 타이완을 거점으로 반청 운동을 이어갔는데 청나라는 이들이 활동할 때 해안 30~50리를 완전히 비워버리는 천계령(遷界令, 1661~1683년)을 실시해 바다를 완전히 닫았다. 그런 영향으로 이 기간에 조선의 중개무역이 대단히 활성화됐고, 부산에서는 두모포에서 초량으로 왜관을 옮겼다. 이렇게 연동된 것이었다.

중국의 해금 정책은 이를테면 ‘처음에는 상당히 그럴 듯했고 나중에는 잘못된’ 것이었다. 1793년 영국의 사절들이 80세의 청 건륭제를 만나 통상을 요구했다. 건륭제는 영국 요구를 일언지하 묵살했다. 영국 사절은 돌아서면서 “외양만으로 이웃을 위압해 온 중국은 천천히 해변에서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됐다.

이제 다시 굴기를 부르짖는 중국은 2014년 대운하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역사상의 운하를 모두 아울러 ‘대운하’로 칭했다. 저자는 중국사를 썼지만 ‘다중적 근대성들’의 입장을 견지한다. 유럽 중심주의를 벗어난 중국 중심주의가 아니라, 곳곳의 근대를 새로이 조명하는 차원에서 중국사를 다르게 규명하는 거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사, 결국 한국사를 어떻게 조망할 것인가. 그것이 과제다. 조영헌 지음/민음사/464쪽/2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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