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지방혐오 멈추자는 보도에 또다시 쏟아진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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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 사회부

‘엄청 싫었던 사람은 꼭 고향이 전라도거나 부모가 전라도더라.’ ‘경상도 사람은 쓸데없는 말을 열나게 큰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부산일보>는 지난달부터 지방을 향한 혐오와 비하, 차별을 멈추자는 취지로 기획 시리즈인 ‘2021 지방혐오 리포트’를 보도했다. 혐오를 멈추자는 기획 보도에 달린 댓글은 실로 참담했다. 특정 지역을 겨냥한 혐오 표현과 규정 짓기가 난무했고, 과격한 표현일수록 공감 숫자가 많았다. 이번 보도가 지방혐오의 심각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경상도민은 불 같은 성미를 지녔고, 전라도민은 뒤통수를 잘 친다는 식의 편견은 혈액형이나 별자리 따위로 알아보는 성격만큼이나 근거가 없다. 출신 지역으로 프레임을 씌우는 행위는 광복 이후 일부 정치세력이 기득권 강화를 위해 허구로 만들어내고 주입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특정 도시에 강력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는 주장은 ‘전라도가 전라도했다’는 식의 혐오를 뒷받침하는 주된 논거다. 하지만 강력범죄와 사건사고는 도시의 인구와 비례해 발생할 뿐, 특별한 경향성을 띠지 않는다. 지방혐오의 주요 타깃인 전라도는 오히려 인구 대비 사건사고 발생률이 전국 평균보다 다소 낮았다.

그럼에도 팩트가 아닌,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포털 사이트에 달리는 댓글이 시민들의 일반 정서를 대변하는 지표는 아니다. 극소수의 네티즌이 댓글창의 여론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한 대학교수는 “인터넷 공론장은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돼 있다”며 “법이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를 계몽시키려 든다면 거센 반발에 직면해 오히려 혐오가 증폭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일상화한 지방혐오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청소년과 청년세대에게 온라인은 하위문화가 아니라 일상이자 현실이다. 이들이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자주 접할수록 혐오에 대한 반작용은 무뎌진다. 끝내는 주위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혐오를 휘두르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웃자고 던진 농담에 악의가 어디있겠느냐며 지방혐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혐오와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이 모욕을 느낀다면 이는 명백한 혐오다. 취재진이 만난 지역민들은 다양한 경로로 크고 작은 모욕감을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지방소멸이 시대적 화두다. 하지만 지방에 대한 혐오적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비수도권을 ‘시골’이나 ‘촌’으로 깎아내리는 인식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이제는 지방혐오의 대를 끊어야 한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에, 농담을 던지기 전에 한 번쯤 멈춰서 혐오인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지방혐오에도 ‘멈춤’이 필요하다.

j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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