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 기본역량 진단과 미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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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철 한국해양대 교무부처장 항해융합학부 교수

최근 말 많고 탈 많았던 ‘2021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가 발표되었다. 2015년, 2018년에 이은 3주기 대학평가로 각 대학의 교육 여건과 성과, 교육과정 운영 등을 평가해 재정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평가였다. 이번 결과에 따라 ‘미선정 대학’으로 분류된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난 심화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선정 대학’ 역시 2024년까지 3년간 대학혁신지원사업에 참여해 자율적인 정원 감축을 추진해야 한다. 마치 도쿄올림픽이 끝나고 파리올림픽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들처럼, 대학들 역시 3주기 평가 성적표를 받자마자 다시 ‘4주기 대학평가’를 대비해야 한다고 아우성친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How’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How’ 프레임에 갇힌 교육 패러다임이란 취업에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는 무엇이고, 이를 습득하고 함양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또 이를 통한 미래의 성공 가능성, 즉 취업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방향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어떤 수준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주는 행동’은 여러 수준에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글자 그대로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주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좀 더 추상적으로 보면 ‘철수가 영희를 좋아한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여보면, ‘철수는 로맨틱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수준에 따라 다양한 프레임을 선택할 자유는 개인에게 있고, 어떤 프레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행복과 의미 추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을 준비한다는 우리 교육은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주는 행위’를 그저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는 식의 하위 프레임에 갇힌 해석 가능성만을 열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교육부는 그저 미래 먹거리를 쫓아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성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비전과 계획 그리고 사회적 논의 아래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져올 미래사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저 역량 기반 기술에 편승한 교육의 방향 설정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노동 현실 속에서 개인이 가진 전문지식과 기술을 주어진 행동 맥락과 환경에 맞게 적용하고 변용하고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교육하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기 위한 교육 방향이다. 다시 말해,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이 지배할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은 ‘Why’ 프레임을 통해 왜 어떤 일이 필요한지, 그 이유와 의미 그리고 목표는 무엇인지 설정하고 거시적 관점에서 문제와 현안을 분석하고 대처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적어도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기술과 공학 중심의 ‘떠먹여 주기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길러줘야 한다. 미래직업 세계에서 인간이 기계를 제대로 제어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계적 사고를 하는 인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가치와 인본주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인재가 필요하다. 교육은 절대 올림픽 준비처럼 몇 년을 주기로 경쟁하는 게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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