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장인(匠人)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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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맹준 전 부산박물관장이 “지독한 가난을 가지고도 외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는 분”이라 지칭한 사람이 있다. 부산 전통 연을 만드는 배무삼 선생이다. 1970년대 초 연 제작에 입문한 뒤 갖은 고생을 하다 2014년에야 겨우 장인(匠人) 칭호를 얻었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지연장(紙鳶匠)에 선정된 것이다. 그는 늘 “나 죽으면 이 일 할 사람이 없다”고 한탄했다. 연 만드는 일이 벌이가 안 되니 맥을 잇겠다는 이가 없는 것이다.

장인은 한 분야에 몰두해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옛 동양에선 이들을 일컬어 천공(天工), 즉 하늘이 내린 기술자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에선 데미오에르고스(demioergos)라는 단어를 썼다. 공공(公共)을 뜻하는 데미오스(demios)와 생산을 뜻하는 에르곤(ergon)을 합친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처럼 세상에 이로운 걸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장인은 인간의 가장 존엄한 모습이다. 고대에는 장인은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았다. 신라 선덕왕이 황룡사에 탑을 세우기 위해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값비싼 비단과 보물을 예물로 바쳐서야 데려온 것처럼.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특히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차별을 강요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장인의 일은 상대적으로 천하게 여겨졌다. 에 기록된 장인은 120여 개 분야에 3000명 정도였는데, 상당수가 관노(官奴)였다.

근대 이후에는 사정이 더 나빠졌다. 서구의 공장식 대량 생산 체제가 도입되면서 저렴하고 균질화된 물품이 쏟아졌다. 사람들도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장인의 정신과 기술은 극히 적은 수의 제자들에 의해 간신히 명을 잇는 처지가 됐다. 전망은 더 어둡다. 거의 무한대로 물품을 찍어 내는 기계가 고도의 학습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AI)까지 갖추게 되면서 인간이 수십 년 갈고닦은 재주가 무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우리 주변에서 장인의 모습은 아예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산 북구청이 ‘장인 선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최고의 숙련 기술로 산업 발전에 공헌한 주민을 장인으로 선정해 인증하는 사업이다. 다음 달 8일까지 신청을 받아 심의를 거쳐 11월에 ‘북구 장인’을 선정할 예정이다. 사라지는 장인의 맥을 지역에서부터 잇겠다는 뜻이 가상하다. 부디 사업이 크게 성공해 다른 지역에도 널리 확산하길 기대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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