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인천에 가서 부산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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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지난 월요일 ‘2021 인천문화포럼 성과보고 정책토론회’에 외부 토론자로 참석하였다. 시민문화력, 청년문화, 아카이브, 문화예술지원 등 네 분과로 열렸고 한 해 동안 20여 명의 위원이 분과를 나누어 토론한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문화재단을 빨리 세웠고 ‘한국근대문학관’ 등의 활동이 앞선 인천을 더 알고 싶은 열망으로 선뜻 참여하였다. 2000년 벽두에 시민 대토론회의 성과를 집약한 <왜 다시 인천인가>라는 책자를 접했을 때의 충격과 이 이후에 ‘황해시대’, ‘제2의 개항’을 내세운 세계 도시대회의 기억이 여전한 탓도 있었다. 인천역을 나와서 차이나타운을 따라 멋지게 변한 문화거리를 걸으면서 부산역 맞은편의 차이나타운, 텍사스 스트리트, 러시아 가게, 동남아 주점들이 보여 주는 어지러운 잡거성이나 사라진 남선 창고와 외롭게 존립하고 있는 백제병원 건물을 떠올리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수도권 인천, 서울과 다른 특성 유지
해양·도시 관한 고민 부산과도 흡사
청년 하위문화 지역 활력으로 이끌어

북항 재생·2030엑스포 추진 계기
아카이빙 작업으로 자료 확보 절실
부산기록원 세워 문화적 도약 기대


우리에겐 수도권으로 불리는 인천이지만 서울과 다른 특성을 유지하고 살려 내려는 생각이 간절했다. 육역 중심의 지도를 해역으로 돌려 보자는 제안은 동아시아 지중해의 결절지 부산을 인식하자는 우리의 고민과 흡사했다. 서해 5도를 아우르며 한강 유역을 두루 포함하는 인천의 시야를 획득하고 해양과 도시의 연계를 제대로 이루자는 제안이다. 그동안 해양 스프롤(무계획적 팽창)이 심각한 인천이다. 육역의 권력이 해양을 무분별하게 침식하였다. 이러한 인천에 비하면 부산의 연안은 아직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다. 수도권이 전철과 일반도로와 고속도로로 통합된 마당이고 보니 인천의 인구가 300만에 이르렀는데 이는 350만에서 계속 줄어들고 있는 부산과 크게 대비되었다. 하지만 인천과 부산이 지닌 연안과 해양에 대한 고민이 <블루 어바니즘(티모시 비틀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게 한다.

확실히 정책 대안에 대한 열의는 여러 가지로 부산보다 앞선 느낌이다. 청년문화에 대한 다양한 의제 발굴이 있었다. 문화예술을 넘어서 청년의 하위문화를 지역의 활력으로 이끌 자발적인 활동과 행정에 대한 진단이 제시되었다. 문화예술지원 토론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내용이 적지 않았다. 정산이 필요 없는 시상금 형태의 지원, 매월 활동비 형태의 지원 등의 방안이 제안되었다. 문화 매개자를 안정적인 방식으로 지원하여 지역문화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 부산은 아직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고정된 지원 형태의 지속으로 일종의 카르텔이 유지되는 측면이 크다. 정산 절차가 까다로운 이유도 지원과 심의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원시스템의 혁신이 지역문화의 수월성을 강화하는 첩경임에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아카이빙’이 문제다. 우선 아카이브 분과가 말한 개념부터 보자. 아카이브가 개인과 단체가 남긴 기록 가운데 가치 있는 자료라면 아카이빙은 이러한 아카이브 중에서 유의미한 것을 다시 골라내어 새로운 아카이브를 만드는 행위라고 한다. 수년 전에 유행처럼 전개되다가 서서히 그 열풍이 사라진 스토리텔링에 비하여 진일보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기초가 되는 자료의 확보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카이빙 사업의 방향은 무엇인가? 대체로 주민자치, 지역 활성화, 도시 재생, 문화 재생을 향한다. 마을 기록가와 같은 새로운 흐름이 대두하고 있다. 가령 인천의 개항장이 한 사례이다. 그런데 부산의 경우 작고하거나 생존하고 있는 예술가와 작가에 치우쳐 있다. 어쩌면 해당 장르의 연구자나 단체가 해야 할 일을 덤으로 지원하는 실정이다. 아카이브, 아카이빙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나 지적 소유권과 같은 문제의 인식이 결여한 상황에서 단순 자료 모음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아카이빙 사업은 아카이비스트의 자료 집성은 물론이고 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일이 목표이다. 나아가서 지역 발전과 재생에 기초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인천에서 진행되는 아카이빙 사업에 대한 올바른 전개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이미 서울기록원이 설립되어 있다. 인천기록원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역시 부산기록원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 허브 도시인 부산은 많은 근대 아카이브가 산재한다. 물론 근대역사관이 부분적으로 이를 수행한다고 본다. 하지만 낙동강 유역, 부산항, 연안의 항구와 포구 등과 같은 대상을 아카이빙하는 일이 긴요하다. 마침 북항 재생이 진행되고 있고 2030 부산 엑스포가 추진되고 있으니 부산을 유기적인 형태로 발전시킬 계기를 얻은 셈이다. 이러한 때에 새로운 문화적 도약을 기대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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