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기초의회, ‘조례 베끼기’ 멈추고 ‘창의 의정’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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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사회부

'기초의회는 일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발의 건수나 회의 참석률이 평가 기준이었다. 의원들의 성과를 제대로 검증해보고 싶었다. 우리가 주목한 것이 조례였다. 부산 기초지자체 조례 10개 중 9개꼴로 다른 지자체 것을 베꼈다는 결과가 나왔다. 본업에 소홀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는 7월부터 부산 기초지자체 조례 대부분이 다른 지자체 것을 베낀 현실을 드러내고 그 원인과 대안을 진단한 기획 기사 ‘우리 동네 일꾼 성적표’를 보도했다. 부산 16개 기초지자체 조례 4393개를 모두 조사한 결과, 지자체 한 곳에만 있는 조례는 310개(7.1%)에 불과했다. 나머지 조례는 사실상 다른 지자체와 내용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지역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조례를 발굴한 것이 아니라 다른 조례를 손쉽게 베껴 왔다는 뜻이다.

이런 실정은 기초지자체가 스스로 조례를 평가한 보고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산 지자체 5곳이 2016년부터 9차례에 걸쳐 진행한 입법평가 보고서를 분석해 보니, 평가 대상 조례 226개 중 개정이나 폐지를 권고한 조례가 절반(113개)에 달했다. 엄연히 조례에 정한 업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20년 넘게 예산이 편성되지 않는 등 온갖 부실 조례 사례가 쏟아진 것이다.

조례 베끼기와 부실 조례 양산이 반복될수록 그 피해는 주민들이 보게 된다.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는 지역 특징을 꼼꼼히 따져 가며 맞춤형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는 곳이 기초의회다. 대의 민주주의의 뿌리로 간주되는 이유다. 기초의회가 다른 지역과 똑같은 조례를 찍어내는 것은 스스로 무용론에 불을 지피는 꼴이다.

그동안 의원들이 입법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부산 기초의원들은 설문조사에서 ‘입법 지원 조직의 전문성 및 인력이 부족’(70.7%)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조례 발의에만 급급했던 관행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취재 중 만난 부산의 한 기초의원은 이렇게 고백했다. “지금도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양질의 조례를 제정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의원들에게 그럴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기초의원들이 따갑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내년 1월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된다. 1988년 제정된 이후 32년 만이다. 지방의회 독립성은 강화하고 의원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인력도 도입된다. 앞으로 의회 권한과 위상은 높아질 것이다. 의원들은 그에 비례해 스스로 주민 대표로서 역량을 갖추라. 기초의회 무용론을 떨칠 기회다. sang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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