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우린 깐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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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평등이야. 너희들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망쳐 놨어. 이 게임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너희들이 그 원칙을 깼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넷플릭스 사상 가장 거대한 히트작이 될 것으로 전망한 ‘오징어 게임’. 도박 빚과 사채, 투자사기 등으로 절벽에 내몰린 456명의 ‘하류 인생’들이 456억 원이라는 일확천금에 목숨을 건다. 게임은 ‘오징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구슬치기, 줄다리기’ 같은 추억의 놀이. 하지만, 다음에 어떤 게임을 할지를 참가자(장기 밀매 의사)에게 귀띔한 게임 관리 요원이 ‘공평과 평등의 규칙을 깼다’는 죄목으로 잔인하게 처형당한다. 관리 대장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 세계의 규칙을 어기고, 이 세계의 순수한 이념을 더럽힌 자들의 최후입니다. 이 세계에서 여러분 모두는 평등한 존재이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야 합니다”라고 사과한다.

‘오징어 게임’ 세계적으로 인기 열풍
협잡, 약탈, 승자독식 사회의 민낯
“가장 중요한 건 공평과 평등의 원칙”

‘대장동…’ 천문학적 불로소득 쟁탈전
끼리끼리 엘리트들의 부동산 약탈극
꼼수와 반칙, 명확한 수사로 처벌돼야


월스트리트저널이 성공 배경으로 “코로나19로 심화된 빈부격차가 전 세계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오징어 게임’은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짓밟고, 협잡하고, 약탈하고, 승자독식 하는 한국 사회의 욕망과 어그러진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오징어 게임’처럼 국내 TV와 신문에는 중국 무협지류 제목의 ‘대장동 게임-화천대유’ 시리즈가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줄거리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 시장 시절 시작한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민관합작 도시개발사업에서 개인투자자와 시행사 화천대유의 3억 5000만 원 투자금이 최종적으로 1조 원대, 2000배가량 수익으로 예상되면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온갖 행태다. 최근엔 성남시가 100% 출자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유동규 전 사장 직무대리가 뇌물과 배임 혐의로 구속되고, 이 지사의 ‘관리를 잘못했다’는 유감 표명까지 나왔다.

‘대장동 게임’은 불공정한 세상이란 배경은 비슷하지만, 감동과 공감은 없다. 대신, ‘끼리끼리 해 먹기’와 ‘비생산적인 불로소득’이란 천편일률적인 ‘엘리트 카르텔 부동산 약탈극’ 시리즈로 이어진다. 한 번쯤 들어봄직한 전직 대법관·특검·청와대 민정수석·검사장, 현직 국회의원 친인척, 회계사 등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벼락부자가 된 기자 출신 시행사 대표는 “좋아하던 형님들”이라면서 대한민국 법조계 최고 엘리트들에게 정신·심리 상담료 명목으로 억대의 고문료를 지급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는 동네에서 구슬이랑 딱지랑 같이 쓰는, ‘니꺼내꺼’ 없이 제일 친했던 ‘놀이 친구’를 뜻한다. ‘대장동 게임’에서 이들은 ‘말도 같이 훔칠 정도로’ 이익 관계로 뭉친 깐부였다.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의 국회의원 아들은 6년 근무에 50억 원의 퇴직금을 챙기며 ‘깐부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게임의 말’에 불과했다고 변명한다. 이쯤 되면 국가 엘리트라고 지칭되는 족속들은 자기 잇속만 채우려는 하이에나일 뿐이다. 시쳇말로 “나도 좀 뜯어먹자”며 끼리끼리 똘똘 뭉쳐서 숟가락 들고 달려든 형국이다. 평생 앵무새처럼 되뇌던 ‘공익, 공공성, 공정, 원칙’은 약에 쓰려도 없다.

‘오징어 게임’은 표면적으로는 게임을 관리하는 요원들이 평등과 공정을 주장했지만, ‘대장동 게임’은 그런 룰조차 찾기 어렵다. 힘세고, 연줄 있는 자들끼리 약자에게서 빼앗아 먹는 ‘약탈 사회’의 전형이다. 결말은 수사에서 밝혀질 일이지만, 정치와 국가 행정 기능이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비즈니스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 피해자는 비싼 땅을 헐값에 수용당하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원주민과 대다수 국민이다.

드라마의 황동혁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오징어 게임’ 게임장보다 더 못한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다”면서 “게임장 내에는 꼼수와 반칙을 응징하는 ‘형식적 평등’이라도 있지만, 이 세상에선 각종 편법과 찬스로 얻는 기회와 이익이 처벌되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는다. 황 감독은 “게임에서 이득을 취하는 극소수의 권력·재력을 가진 사람들, 그것이 돌아가는 시스템에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고, 분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드라마 엔딩에서 ‘456번 아재’ 쌍문동 성기훈(이정재 분)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잘못된 거잖아”라면서 게임의 세계로 다시 뛰어들어갈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 게임’ 시즌 2가 기대된다. “너희들이 누군지, 어떻게 사람들에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라는 대사처럼 특검이든 검찰 수사든 어디서라도 의문을 명확하게 해소한 뒤, ‘이 세계의 순수한 이념을 더럽힌 자들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실망하겠지만, ‘아직도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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