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베토벤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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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행하고 괴롭다.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나의 예술뿐이다. 내 안에 있는 음악을 모두 꺼내 놓기 전에는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비참함도 견디고 있다.” 위대한 작곡가 루드비히 판 베토벤은 동생들에게 남긴 이 유서를 평생 품 안에 간직했다.

베토벤은 28세부터 청각 장애를 앓았고, 44세에는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182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던 9번 합창 교향곡 초연 때는 기립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해 멍하게 서 있기까지 했다.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하지만,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막대기 모양의 공명판을 입에 물고 피아노 줄에 갖다 대 소리의 높낮이에 따른 떨림을 느끼며 작곡했다. 음악은 소리만이 아니라 몸으로 비롯되고, 만져지고,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유서처럼 “내 안의 모든 음악을 꺼낼 때까지”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베토벤은 창작의 과정에 대해서 “상당히 오랫동안 종이에 적지 않은 채로 생각을 담아둬. 마음에 들 때까지 지웠다가 고치면, 어느새 내 마음 앞에서 거푸집처럼 보이고 들려. 난 그저 종이(기보)에 옮겨 적는 것밖에 없고, 이 일은 순식간에 이뤄져”라고 술회했다. 그에게 창작은 신과 마찬가지로 시공간이 압축된 한순간에 생기는 창조 행위였다. 빈의 숲길을 걸으며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신의 음성’과 ‘우주의 소리’를 구했다. 베토벤은 “나같이 불행한 사람이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사실을 보고 불행한 사람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운명’, ‘합창’ 등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한 그는 10번째 교향곡 작업 중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단편적인 스케치와 관현악 악보 800장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을 인공지능(AI)이 완성하는 프로젝트가 독일에서 진행됐다. AI가 머신러닝 기법으로 베토벤의 스타일을 학습해 10번 교향곡의 나머지 부분을 작곡하는 프로젝트다. 디르크 카프탄이 지휘하는 ‘베토벤 오케스트라 본’은 9일 오후 7시(현지 시간) AI가 완성한 베토벤 교향곡 제10번을 그의 고향 본에서 세계 초연한다. 마젠타뮤직 360(MagentaMusik 360)에서 무료로 생중계된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지난해 연주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다.

AI가 청력을 상실한 천재 음악가의 고통과 불굴의 의지, 사랑과 연민,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급변하는 세계사에 내몰린 인간의 고뇌를 표현할 수 있을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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