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명반시대] 91. 헬라도 니그로 ‘Far In’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새로 등장하는 아티스트의 음악과 신보를 접할 때 그 음반을 끝까지 들어야 진가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음악이 스쳐가도 아티스트의 음악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몇 초 만의 만남으로 음악에 진지하게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곧 발매를 앞둔 헬라도 니그로(Helado Negro)의 음악이 이런 경험을 준 음반인데요. 멜로디조차 인식이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찰나의 질감과 색채만으로 ‘이 앨범은 절대 놓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더불어 ‘아마도 올해 하반기 가장 인상에 남는 음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헬라도 니그로는 1980년생으로 본명은 로베르토 카를로스 랑게(Roberto Carlos Lange)입니다. 뉴욕 브룩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한 그는 2009년 정규 앨범 ‘Awe Owe’로 데뷔를 합니다. 개성 강한 음악으로 가득 차 있던 이 앨범은 팝이라는 일반적 대중음악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있다는 인상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감성적인 아이디어가 음악을 빛내며 듣는 이를 자극했지요.

이후 헬라도 니그로는 2011년 ‘Cante Lechuza’, 2012년 ‘Island Universe Story-One’등 매년 꾸준히 음반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그의 음악은 영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의 언어가 항상 섞여 있으며, 에쿠아도르에서의 이주 그리고 남부 플로리다에서의 유년과 뉴욕에서의 본격적 음악적 활동 등 삶의 이력처럼 하나의 음악 안에서 다른 문화의 색깔이 본연의 개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며 공존합니다. 그의 음악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살펴보면 라틴 팝이나 라틴 음악의 카테고리에서 발견되는 이유에도 이러한 지점 때문인 듯 보이지요.

라틴 음악이라는 분류가 지역에 대한 장르 용어처럼 보이지만 지역적 장르 분류가 고유의 언어적 개성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 음악이 가진 멜로디나 리듬에 관한 개성에 기인한 것인지 지금의 시대에는 그 의미와 잣대가 더욱 모호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심지어 그 명칭 자체가 이제 앞으로 더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한다면 이 음반은 그 이유에 대한 대답 그 자체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헬라도 니그로의 새 앨범은 그만큼 음악이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규정되고 설명되는 것 이상 훨씬 더 자유롭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펼쳐질 수 있다는 미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헬라도 니그로가 음악뿐 아니라 사운드와 비디오 아트에 관한 활동 그리고 2019년 ‘United States Artists’ 와 ‘Foundation for Contemporary Arts’ 등에서 수상한 이력을 보더라도 그의 음악에 대한 태도가 엿보이는 듯한데요. 곧 발매될 2021년 신작 ‘Far In’은 단 3곡만이 선공개된 상태이지만, 그의 자유롭고 풍부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음악이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될 수작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김정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