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최치원의 가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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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옛 문인들의 연행길이 그리워 베이징을 여행할 적마다 ‘유리창(琉璃廠)’은 반드시 들렀었다. 선진 학문에 대한 갈증으로 이곳을 찾았던 조선 선비들의 열정과 고뇌의 흔적들을 느끼고 싶었고, 그들이 만났던 청대 학자들의 오래된 문자향에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연행길에 올랐던 이들 가운데 이덕무만 ‘간서치(看書痴)’가 아니었다. 홍대용과 박지원, 유득공이나 박제가도 ‘책만 읽는 바보들’이었다. 공무가 없는 날에 그들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취영당(聚瀛堂)’이나 ‘오류거(五柳居)’에 들러 신간 책들을 들척여 보고 점주인 도생(陶生)들과 서책에 대한 담소를 나누었다. 유리창은 더 이상 그때처럼 한·중 지식인들 간의 지식 교환 및 문화 교류의 창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중국 문방사보 문화제일가’라는 당국이 내세운 공식 명칭처럼 여전히 문방사우나 고서에 관심 있는 이들은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베이징 고서점에서 만난 최치원 문집
천년 전 최고 문장가의 아름다운 시편들
가을을 노래한 시적 정취 특히 돋보여

어느 해인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고즈넉한 정취의 작은 고서점을 찾았었다. 행여나 당대 중국 학자들에게도 높은 추앙을 받았던 추사 김정희의 무슨 흔적이나 아니면 조선 문인들과 교류하던 청대 학자들의 묵적(墨跡)이라도 발견하는 행운을 기대하며 옛 전적들을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고서들 틈새로 비교적 근년에 간행된 <계원필경집교주>가 눈에 들어왔다. 아, 18~19세기 한·중 지식인들의 성지요 북학의 요람에서 천년 전 당나라에 활약했던 최치원의 서책이 보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중국 최고의 최치원 연구가인 남경사범대 당은평 교수가 최치원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에 교주(校註)를 붙여서 상하 두 권으로 간행한 책이었다. 879년에 완성된 최치원의 이 문집은 886년 책으로 엮어 신라 헌강왕에게 헌상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책이다. 우리 역사에도 근세의 명청 시대가 아니라, 이미 저 까마득한 당나라와 남북국 시대에 깊은 학문과 빼어난 문장을 지닌 이런 대단한 학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 문집은 재당 시기 그가 지은 수많은 글들 가운데 ‘모래를 헤쳐 금을 찾는’ 식으로 주옥같은 명문들을 엄선하여 묶은 것으로 문장이 난삽하고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워 오늘날까지 중국에서도 대단한 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그가 귀국할 때 중국 사람으로서 최치원과 동년인 고운(顧雲)이 <유선가(儒仙歌)>를 지어 ‘열두 살에 배타고 바다를 건너가, 문장으로 중국을 감동시켰고, 열여덟 살 때에는 문단을 휩쓸었으며, 화살 하나로 금문책을 쏘아 뚫었다네’라고 칭송했던 것이다.

당나라에서나 귀국 후에나 최치원은 ‘동방문장지조(東方文章之祖)’요 ‘동국문학지조(東國文學之祖)’라는 명성에 걸맞게 아름다운 시문들을 펼쳐 내었다. 특히 가을을 노래한 그의 시들은 한결같이 문장이 수려하고 시정이 넘친다. ‘곤주에서 이원외에게’에는 ‘연꽃이 지도록 가을 연못에 비내리고, 수양버들 흔들리게 새벽 강 언덕에 바람이 분다(芙蓉零落秋池雨 楊柳蕭疏曉岸風)’라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 시를 썼다. ‘가을날 우이현을 다시 지나며 이장관에게’에서는 ‘외로운 나그네 또 다시 이곳에서 신세 지나, 가을 바람을 두고 이별의 슬픔을 읊조리네(孤蓬再此接恩輝 吟對秋風恨有違)’라고 회자정리의 삶속에서 자기 인생의 서러움을 노래한다. 그리고 ‘밤비 내리는 객사에서(郵亭夜雨)’라는 시에서는 ‘객사에 늦가을 비 내리는데, 차가운 창가의 등불이 고요하여라(旅館窮秋雨 寒窓靜夜燈). 시름 속에 앉아 스스로 서글퍼하노라니, 참선하는 중이 따로 없어라(自憐愁裏坐 眞箇定中僧)’고 객사에서 느끼는 고적한 가을 정서를 노래하고 있다. 이 시와 더불어 무엇보다 ‘가을밤 비 내리는 가운데(秋夜雨中)’라는 시는 그의 가을시 중에서도 압권이다. ‘가을 바람 쓸쓸히 부나/ 세상은 이 소리를 알지 못하네(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깊은 밤 창밖엔 비 내리는데/ 등잔 앞 내 마음은 만리 먼곳에(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이런 가을 시들을 보노라면 그에게서 가을은 외롭고 서러우며, 서글프고 고적한 계절이다. 그는 연못에서 가을을 보고, 바람 소리에서 가을을 들으며, 창밖 빗줄기에서 가을을 읽고, 깊은 밤 홀로 앉아 가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는 가을의 음유시인, 가을을 타는 사람이다. 가을에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보고 듣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자체가 그렇게 쓸쓸하고 처연한 것이다. 특히 그것도 타향에서라면 이런 슬픈 감정이 배가 되지 않으랴. 계절이 주는 우울감과 고독감은 시인에게 놀라운 명문들을 창작하게 한 명의의 처방전이 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가을 깊은 곳에 들어와 있다. 바야흐로 세상의 시인들이 천년 전 신라의 학자처럼 밤을 지새우며 펜촉을 통해 고뇌의 진액을 흘려보낼 때이다. 눈 오는 겨울밤의 행복감만 그리운 게 아니다. 비오는 가을밤의 쓸쓸함도 이렇게 아름다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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