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성덕’ 오세연 감독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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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감독. 문경덕 인턴기자 오세연 감독. 문경덕 인턴기자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성덕’에 나오는 오 감독의 내레이션이다. 영화는 가수 정준영을 중학교 시절부터 좋아했고, ‘정준영 팬’으로 함께 TV에도 출연해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자부했지만, 정준영의 성범죄 이력이 드러나며 충격을 받은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다큐 영화 ‘성덕’은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 앵글 섹션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는데, SNS에서 회자되며 화제몰이 중인 작품이다. 부산 출신으로 대학(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가기 전까지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오세연 감독을 10일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인근에서 만났다.

오 감독은 “‘성덕’ 되기가 어려운데 제가 그 사람의 성덕이었다는 게 웃픈(웃기고 슬픈) 포인트”라면서 “영화 속 덕후들은 다 지인이나 가족인데 나처럼 상처받은 팬이 멀리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도 이렇게나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가 영화를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는 ‘분노’였다. 오 감독은 “솔직히 성범죄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당황스럽고 슬프고 화나서 영화로 찍어야겠다고 생각을 못 했다”면서 “그렇지만 범죄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여전히 팬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왜 저러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준영뿐만 아니라 성범죄를 저질러 연예계를 은퇴하는 연예인이 꾸준히 나오면서 영화는 더 힘을 얻었다. 오 감독은 “사실 정준영 사건이 터진 게 2019년 3월이니 사건이 이미 사람들 관심에서 잊혀져 시의성이 없으면 어쩌지 걱정했다”면서 “하지만 이어서 계속 비슷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어서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9일 있었던 ‘성덕’ 첫 상영 현장은 강소원 BIFF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방청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호응의 현장”이었다. 관객들은 함께 웃고 탄식하며, ‘덕질’과 ‘배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영화를 현장에서 본 지인이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싱어롱을 능가하는 웃음과 박수 소리가 있는 현장이었다고 설명해 함께 웃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단순히 한 ‘성덕’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박사모’의 이야기로까지 확장한다. 오 감독은 “실제 ‘박사모’의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무조건적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약간의 연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치 콘서트 풍경처럼 느껴졌다”며 “읽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편지를 수십통 쓰고 나보다도 그 사람을 신경쓰는 마음이 덕질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다큐 영화라고 하면 갖게 되는 무거울 것 같다는 편견과 달리, 이 작품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박장대소하게 된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 감독은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오빠가 법원 공판에서는 변호사의 도움 없이는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을 보고 실망이 컸다”면서 “영화를 위해 공판에 간 것이지만 법정이 무대이고 방청석이 객석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슬프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촬영을 진행하면서 원래 기획 의도였던 남아 있는 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기획의 방향이 달라졌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도 걱정됐고, 남아있는 팬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컸다.

그는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고 비슷한 경험을 한 팬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부끄러움이든 죄책감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잠깐이라도 털어버렸으면 좋겠다”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성덕’은 오 감독이 설립한 제작사인 해랑사의 첫 작품이자 부산영상위원회 2020 부산제작사 영화 지원작이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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