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위상 위축… 교과서에 더 많이 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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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걸 산문집 ‘풍경의 해석’ 출간

“현대시조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제일 화급하고 큰 과제입니다. 가람, 외솔 선생이 문교부 편수관을 하던 시절에는 교과서에 시조가 많이 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옛날 작품 서너 편밖에 실리지 않아요. 자유시는 2000년대 이후 최근 것까지 계속해서 실리지만 시조는 옛날 그대로 중지된 상태예요. 일본 하이쿠는 국가가 전폭적으로 밀고 있어요. 우리는 전혀 그런 게 없어 안타깝습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명예이사장인, 경남 창원시에 거주하는 이우걸 시조시인이 산문집 (동학사)을 내놓고 하는 말이다. 시조의 위상이 너무 위축돼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이 “현대시조를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제미·운문 미학 극대화 통해
현실과 치열하게 다툰 정신 농축
日 하이쿠처럼 국가 지원 필요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그의 대표작 ‘팽이’는 1970년대 유신시대의 억압 속에서 정의를 증언한 희생자들을 팽이에 빗대 쓴 시조라고 한다. 시조는 한가한 노래가 아니라 승화된 수사를 통해 시대와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조를 말할 때 가람(이병기)과 노산(이은상)을 말하고, 그 뒤를 이어 초정(김상옥)과 호우(이호우)를 들고 그다음에는 백수(정완영)를 세우는 것이 거의 상식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현대시조의 초창기, 계승기, 완성기라는 뜻과 별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문득 이 세 시기는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과 비슷하지 않나 라는 것이다.” 이는 시인 박재삼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우걸 시조시인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조를 향한 무서운 탁마, 그리고 현실과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문학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들의 문학정신은 꽃 피는 순간을 기다리는 떨리는 꽃잎처럼 긴장된 것이었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마침내 남은 한 잎이/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나도 아려 눈을 감네’. ‘나도 아리는’ 경건한 정신으로 빚은 이호우의 ‘개화’는 형식 미달도, 초과도 아닌 정형시적 위치에 우뚝 서 있는 시조다. 평론가 김윤식은 “오늘날의 시조는 이 한 편을 낳기 위한 진통이었다”고 말했단다. 백수 시조도 다르지 않다. ‘쓸쓸한 밤하늘을 말없이 외로 떠가다/달도 나뭇가지에 걸려야 비로소 둥글어진다/한세상 홀로인 이 마음 너를 만나 익은 설움’(‘달과나무’ 전문). 저자는 “이 시조에서 기적적인 사실을 확인한다”고 했다. “한국시조의 한 산맥이 난세에도 의연히 전통을 받들고 세인의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조가 하이쿠처럼 자리를 못 잡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책에 김상옥, 이호우, 이영도, 정완영,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울산의 신춘희와 부산의 김종에 관한 글을 실었다. 시조문학의 오늘을 있게 한 천재적인 개척자 초정에게서 그는 개인적으로 휴머니즘을 배웠다고 한다. “1980년대 부산의 어느 일식집에서 초정 선생이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걸인’을 언급했는데 그 뒤부터 휴머니즘을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시조의 단단한 정신이 저류 속에서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1970년 대학교 도서관에서 너무 외로워 를 꺼내들었단다. ‘여미어 도사릴수록/그리움은 가득하고/가슴 열면 몰려드는 겹겹이 먼 하늘/바람이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흔든다’. 이영도 선생의 이 ‘모란’을 읽고 그는 시조에 일평생을 걸게 됐다고 한다. 등단 전후의 과정에 김춘수 선생의 고평, 가혹한 비평, 가르침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시조가 현대시에 맥이 닿아 있다는 말이다.

“절제미를 살리고, 운문 미학의 묘미를 극대화하고, 주제의식도 건강하게 해서 시조가 자유시와 또 다른 변별성을 지니면서 후속세대의 교과서에 더 많이 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조는 우리말이 빚은 높은 성취입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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