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가족입니다] “시설 밖에서 누군가와 체온 느끼며 사는 것 자체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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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가족입니다] (2) 시설 나와 가족 만든 장애인들


“식탁에 약 갖다놨어, 약부터 챙겨 먹어.” 발달장애를 가진 정재욱(50) 씨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뇌병변 장애를 겪고 있는 김한민(40) 씨의 간질약을 챙기는 것이다. “한민이가 간질 발작으로 자주 넘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 이후로는 한민이가 약을 제때 먹을 수 있도록 챙겨 주고 있지요.”

김 씨의 식사 수발도 정 씨의 몫이다. 무거운 걸 제대로 들지 못하는 김 씨를 위해 식사 시간마다 국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직접 씌워 주는 소소한 일까지 정 씨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기자는 최근 둘이 함께 사는 부산 남구 대연동 임대아파트를 찾아 그들의 삶을 지켜봤다.

발달장애·뇌병변장애 두 사람
대연동 임대아파트서 함께 생활
친형제보다 더 돈독한 우애 나눠
모두 수급자라 주거비 부담 커
법상 형제·가족 인정 못 받아
한 사람은 주거급여 포기해야

정 씨와 김 씨는 함께 산 지 어느덧 7년이 넘은 ‘진짜 가족’이다. 어린 시절부터 각각 다른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지내온 두 사람이다. 그러다 2014년 함세상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센터)의 지원을 받아 자립에 성공했다. 센터가 운영하는 자립지원 프로그램인 ‘체험 홈’에서 임시로 거주하며 친해진 두 사람은 룸메이트가 됐고, 기초생활수급자 주거급여를 받아 남구 대연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터를 잡았다. 정 씨와 김 씨는 모두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는 없지만, 둘은 피붙이보다 진한 유대감을 나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내가 먼저 죽으면 전 재산을 너에게 주겠다’고 서로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법적인 문제로 공증을 받지는 못한 상태다. 7년째 이들을 보살피는 활동지원사 강이례(74) 씨는 “두 사람은 이제 내 자식 같은 존재”라면서 “오랫동안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서로 아끼는 모습은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장소가 줄어들면서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럴 때마다 정 씨와 김 씨는 집에서 함께 TV를 시청하거나 센터의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김 씨는 “코로나19 이후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게 됐지만 누군가가 계속 같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이야 임대 아파트에서 형제처럼 지낼 수 있게 됐지만,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나와 가족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장애인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는 터라 주거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2014년 남구의 한 소규모아파트에서 자립을 시작한 두 사람 역시도 월세를 감당 못 해 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야 했다. 정부가 지급하는 19만 원의 주거급여로는 안정적으로 오래 머물 수 있는 집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여곡절 끝에 한집에 살게 됐지만 법은 이들을 형제로도, 가족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계약자인 정 씨만 주거급여 혜택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2인 가구로 인정받지 못해 김 씨는 매번 주거 급여를 받기 위해 정 씨에게 월세를 매월 지급한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인 그에게 행정의 벽은 높다. 결국 김 씨는 주거급여를 포기하고 자신의 생활비 일부를 정 씨에게 주는 식으로 주거비를 공동부담한다. 주택도시기금의 신혼부부전용 전세자금 대출도 두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시행되면 사정은 나아질 전망이다. 이들과 같은 대안적 가족공동체의 권리관계가 규정되는 덕분이다. 생계를 함께하는 대안적 가족공동체의 재산관계 등 법적 권리가 마련되고,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조건에도 포함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상속제도 개선을 통해 두 사람이 바라는 법정상속 또한 가능해질 전망이다.

부산시장애인탈시설주거전환지원단 제청란 단장은 “지금까지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새롭게 가족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주거비 문제, 돌봄문제 등 여러 여건이 열악해 탈시설이 어려웠다”며 “주거급여 현실화 등의 예산지원과 함께 이들이 가족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가족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게 더는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 자립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죽는 순간까지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시설 밖에서 누군가와 체온을 느끼며 자유롭게 사는 것,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김씨는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아프지 않고 계속 이대로만 살고 싶다”며 웃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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