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변화하는 ‘논밭 위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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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의 공간 읽기] 양산 ‘스페이스 아리주진’

노랗게 익어가는 벼를 배경으로 마을 앞 도로에서 들판 쪽으로 쑥 들어간 곳에 눈에 들어오는 한 건물이 있다.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된 건물 외장재가 눈을 사로잡는다. 주변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나 있어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제법 잦다. 바로 카페 ‘스페이스 아리주진’(이하 아리주진·경남 양산시 주진동)이다. 천성산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들판은 마을에서 보면, 그 모양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마을 입구에서 보면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처럼 서(西)에서 남(南)으로 논배미(논의 한 구역)가 층층이 이어진다. 카페 이름은 이 동네의 과거 지명인 ‘아리’와 현재 지명인 ‘주진’에서 따왔다.

과거 지명 ‘아리’·현재 지명 ‘주진’ 완성
마을과 떨어진 들판에 둘러싸여 매력적
벼·쌀알 모티브로 건축과 디자인 조화
삼나무 재료로 한옥 4칸 구조 형상화
2020 목조건축대전 준공 우수상 받아


■사계절 논의 변화가 배경·경치

아리주진은 결코 평범한 곳에 있지 않다. 입구 쪽을 제외하곤 온통 들판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을과 살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한데 이게 매력적이다. 도심 카페와는 전혀 다른 매력 말이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논이 배경이 되고, 경치가 되었다. 방문객들은 이를 ‘논밭 뷰’라 했다. 이런 변화를 즐기기 위해 계절마다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건축주는 어떻게 이곳에 카페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 40대 후반의 건축주는 주진 마을이 고향이라고 했다. “윗대 조상부터 대대로 이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았죠. 직장을 다니다 발목을 다쳤는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쩌면 모험이기도 했고요. 부모님이 물러주신 땅에 이 건물을 짓게 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다. 아리주진은 대지면적 954㎡, 건축면적 147㎡에 2층으로 된 주 건축물과 단층의 부속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건축 설계는 울산대 건축학부 김범관 교수가 했다.

건축주는 처음에는 몇몇 건축사들에게 설계 문의를 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침 김 교수의 건축 설계 연구에 대한 소식과 작품을 접하고 의뢰를 했다. 그는 김 교수에게 작품성도 있고 아름다우면서 독창적인 건물을 지어달라고 주문했다. “작품성, 아름다움, 독창성…. 욕심이 많았죠. 허허.” 이런 건축주의 요구에 화답하는 의미에서 김 교수는 과감하게 목재를 사용했다.

김 교수는 “나무가 가지는 한계에 도전하고 싶었다. 보편적인 목(木)구조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목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내부는 삼나무로 된 중목 구조에 합성 징크를 재료로 한 팔각지붕, 그리고 외벽은 유리, 알루미늄 패널의 현대식 옷을 입은 이색적인 건물이 탄생했다. 더불어 아리주진은 2020 목조건축대전 준공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카페 옆엔 부속건물인 수변 파빌리온이 있다. 야외 휴게 공간으로 여름엔 이곳에서 발을 담그고 쉴 수도 있다. 2톤이 넘는 삼각형 지붕을 30개 남짓의 38mm 얇은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들이 지지하고 있다. 지붕을 미러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해, 구조물이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벼 모티브, 공간 브랜딩

건축주는 이곳에서 건축의 의미를 조금 특별하게 찾고 싶었다.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쌀과 땅(논)을 주제로 그 모습과 의미를 담고자 했으며 역사와 문화의 기억을 상업 공간에 존속시키는 작지만 의미 있는 건축을 꿈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양하게 변하는 자연환경 속에 비, 바람, 햇빛을 맞으며 익어가는 벼는 주진동의 모습이자 사람들이 살아온 삶과 환경을 보여준다. 아리주진은 주진동을 대표하는 벼와 쌀알, 논을 모티브로 했다. 건물은 중목 구조를 유리와 알루미늄 패널 같은 외장재가 감싸고 있는 형태다. 실제 2404개의 알루미늄 패널과 376개의 특수 패널을 개발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건축의 색과 패턴이 지속적으로 반응하는 감응형 입체 건축 입면을 완성했다. 알루미늄 패널은 사계절을 거치며 변하는 벼의 다양한 색상 코드가 들어 있어 빛과 온도,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5가지 색을 연출한다. 이 패널은 특수한 공구 없이도 누구나 쉽게 시공 가능한 DIY 모듈형 입체 패널로 심미성뿐만 아니라 기능성까지 고려했다. 카페 외벽은 벼를 형상화한 알루미늄 패널을 쌓듯이 겹쳐놓으니 마치 용이나 물고기의 비늘, 찰갑옷의 미늘처럼 느껴진다.

김 교수는 “알루미늄 패널에 전기 도금 기술을 적용해 외부 환경에도 변질이나 변색 없이 견딜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특별히 개발한 건축 외장재는 K-디자인 어워드 2020을 수상했다.

아리주진은 사람들의 감성적 열망을 자극하고 충족시킨다. 그게 벼의 형상을 이미지화해 고객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아리주진에서는 감각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그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벼의 이미지는 건물 외벽에만 있는 게 아니다. 건물 안과 밖은 온통 벼 천국이다. 미술 소품, 탁자, 화장실 벽면과 바닥 타일 하나까지 벼나 쌀알을 모티브로 해 꾸몄다. 황금 들녘의 벼와 논을 모티브로 한 바닥 타일은 그 절정이다. 건축과 디자인의 조화가 빛난다. 이게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느낌이다. 김 교수는 “벼와 쌀알 등을 모티브로 한 이미지를 카페 곳곳에 만들어 놓고 고객에게 시나브로 다가감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게 했다. 이게 아리주진의 공간 브랜딩이다”고 설명했다.



■목(木)구조에 건축재료 개발까지

김 교수는 중목 구조의 중후한 나무 구조를 그대로 노출해 자연과 닮은 편안한 삼나무 향이 나는 건축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에 커튼월의 프레임 마감과 바닥 타일, 가구, 문의 손잡이 또한 모두 건축의 개념에 맞춰 특별 제작하고 디자인했다.

“건축과 디자인을 어떻게 조화롭게 섞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건축적 표현과 디자인의 디테일을 통해 고객들이 건축과 공간에 담긴 의미와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보고,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게 했습니다.” 김 교수의 건축을 대하는 자세가 읽힌다. 아리주진이 자랑하는 중목 구조는 카페 2층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전기, 조명, 공조, 설비 시스템은 중목 구조 속에 매입해 나무 구조 그 자체가 밖으로 드러나 하나의 기능적 구조체가 되도록 설계했다. 요컨대 내부 공간은 가로, 세로 120mm의 중목 기둥과 천정의 구조 보가 자연스럽게 노출돼 개방감은 물론이고 나무 구조의 아름다움과 공간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정면 4칸, 측면 4칸 모양의 한옥 4칸 구조를 형상화 한 모듈 형태다.

개방감을 위해 4면이 유리로 된 상업 공간의 특성상 냉·난방과 환기 시스템도 특별히 구조와 설계 콘셉트에 맞춰서 계획했다. 1층 천정과 2층 바닥에서 냉난방 장치를 매입해 시공했고 천정에 뜨거운 공기를 배출하는 자동 천창을 설치, 환기시스템을 만들었다. 1~2층을 관통하는 미니 중정 형태의 ‘환기 우물’을 만들어 채광과 함께 실내 공기가 공조할 수 있도록 했다.

취재에 함께 동행했던 이종민 건축사는 “건축적으로 새롭게 시도된 게 아리주진에 많다. 다만 지붕 각도를 조금 더 주었더라면, 건물이 좀 더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있다”고 말했다.

건축과 공간은 항상 변화하는 문화, 환경 그리고 건축주의 계획과 요구에 의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러한 변화와 요구 속에 건축은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그 조건에 맞는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경험을 계획하고 짓는다. 아리주진은 주진동을 지키고 만들어준 땅과 벼 그리고 영속적인 바람과 물, 햇빛을 활용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위로부터 아리주진 대표 외장재인 알루미늄 패널, 목 구조가 선명한 아리주진 2층,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한 ‘아리주진’. 건축 사진가 윤준환 제공·정달식 선임기자

공동 기획: 부산일보사·부산광역시건축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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