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에 ‘화들짝’ 비탈길과 ‘씨름’… “학교 가는 길이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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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진다] ②고난의 등하굣길

엄마와 늘 함께하는 하준이의 등굣길은 집 앞 인도가 없는 골목길(왼쪽)부터 시작한다. 이어 폐교된 촤천초등학교 담벼락(가운데)을 지나서 급경사로 치닫는 사거리(오른쪽)로 접어든다. 반년 동안 하준이와 등하굣길을 같이 한 엄마는 이제 이사갈 곳을 찾고 있다. 변은샘 기자

학교가 문을 닫은 지역의 학생들은 장거리·장시간 통학에다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다. 말그대로 ‘고난의 등하굣길’을 걸어야만 하는 셈이다. 일부 폐교 학생을 위한 통학버스가 지원되기도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통학 지원비가 지급되기도 한다. 길어진 통학 거리와 시간은 학생들의 학습은 물론 성장발육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또한 폐교지역의 소외계층 학생들이 감당해야하는 ‘교육 불평등’의 산물이다.

취재진은 학교가 사라진 지역의 학생과 등굣길을 동행하면서 이들이 겪고 있는 통학의 어려움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폐교 좌천초등 코앞에 사는 초1
엄마한테 붙어 1km 험난한 통학
공사 차량에다 미끄럼까지 신경
안 넘어지려 걷다 보니 밤엔 끙끙


금성중 폐교로 학교 멀어진 중1
시간 맞추려 아침마다 허겁지겁
장거리 통학, 성장발육에 악영향


■밤에 끙끙 앓는 초등생

“보행로 없는 등굣길에 레미콘, 굴착기… 학교 가는 길이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되면 안되잖아요?”

부산 동구 수정초등학교에 다니는 하준(8·가명)이의 엄마 강윤주(39) 씨는 벌써 반년째 매일 하준이와 함께 등하굣길을 함께 한다. 좌천동 망양로에 위치한 하준이 집 앞에 있는 좌천초등학교는 2018년 2월에 폐교됐다. 하준이는 어쩔 수 없이 코앞의 폐교를 두고 올해부터 집과 1㎞ 떨어진 수정초등에 입학했다.

올해 6월 20일 오전 8시, 하준이는 대문을 나서자마자 엄마 손을 꼭 붙잡았다. 성인이 양팔을 벌리기 어려울만큼 좁은 골목을 지나자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 아스팔트가 나왔다. 키 100㎝가 채 안되는 하준이가 엄마 팔에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경사를 내려갈 때마다 몸이 쏠려 한 줌짜리 하준이 발목이 휘청거렸다. 발 아래를 보지 않으면 발목이 꺾이는 바람에 하준이 시선이 자꾸 아래로 내려갔다. 그 때였다. 높이만 4m가 훌쩍 넘는 레미콘이 “빵”하고 경적을 울렸다. 하준이가 재빨리 엄마 뒤로 숨었고, 기자도 놀라 하준이를 살폈다. 강 씨는 “이제 겨우 첫 비탈길일 뿐이다”고 말했다.

비탈길을 지나가니 곧 사거리가 등장했다. 좌우와 위아래에서 차가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인도는 없었다. 강 씨는 매고 있던 책가방을 단단히 매고 하준이를 더 가깝게 끌어당겼다.

며칠 전 그 도로에서 하준이는 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 날은 비가 왔기 때문에 강 씨와 하준이가 각자 우산을 쓰느라 손을 잡지 못했다. 가파른 경사에 미끄러질까봐 둘 모두 고개를 숙이고 발 밑만 바라보며 조심히 걸었다. 그 때 뒤에서 하준이의 옆을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하준이의 우산을 쳤다. 그 바람에 쓰러진 우산대가 아이 얼굴의 눈 옆을 긁었다. 이후 사거리가 나올 때마다 하준이는 엄마 손을 땀이 날 때가지 꽉 쥔다.

산복도로에서 수정초등 정문까지 만난 비탈길만 5개. 길에는 펜스가 없어 도로와 보행로가 구분되지 않았다. 등굣길 주택가에서는 레미콘, 굴착기, 건축폐기물 수거 차량이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하준이와 강 씨는 집을 나선 지 20분 만에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강 씨는 7년 전 하준이의 좌천초등 입학을 고려해 남구에서 동구로 이사왔다. 좌천초등이 문을 닫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이 반복되니 아이의 몸도 성할리 없다. 강 씨는 “하준이가 등하굣길에 안 넘어지려고 발목에 힘을 주고 걸어서 밤이면 다리며 발목을 아파하는 일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강 씨는 이제 이사갈 곳을 물색하고 있다. 하준이의 바로 아래 7살 동생도 내년이면 입학인데, 내년에 육아휴직이 끝나는 강 씨는 두 아이의 등하교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 씨는 취재진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학교에 오고가는 길이 불안한데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겠어요. 갑자기 학교가 사라진다는게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인 것 같아요.”



■잠 못자고 아침밥도 허겁지겁

지난달 23일 중학교 1학년이 된 승영(14·가명)이는 다소 쌀쌀한 아침공기를 가르고 집 근처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머을버스 탑승 시각은 오전 7시 40분. 모범생인 승영이는 등교 시간인 8시 30분보다 20분가량 먼저 도착하기 위해 매일 아침 7시에 기상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학교의 특별활동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날 때도 있다.

덜컹거리던 마을버스는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 구불구불한 산복도로에 진입했다. 이어 승영이는 시내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마을버스에서 내린 뒤 86번 버스로 환승했다.

시내버스에서 내린 승영이는 학교까지 10분을 걸어야만 한다. 인도가 없는 구간에는 뒤에서 차량이 다가오는지 수시로 살펴야만 했다.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정확히 오전 8시 10분. 집에서 출발부터 학교까지 30분이 걸린 셈이다. 같은 동구에 위치한 승영이 집은 범일동에 있다. 초량동에 있는 학교까지 4㎞가 넘는다. 승영이는 “버스를 오래 타고 많이 걷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등교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밥도 허겁지겁 먹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부산 동구의 초량·수정동에는 부산중과 부산서중, 경남여중, 부산동여중, 선화여중 등 중학교 5곳이 몰려있다. 반면 지난해 좌천동의 금성중이 폐교되면서 좌천·범일동에는 중학교가 단 한 곳도 없다. 초량동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한 번은 비가 오는날 범일동에 사는 한 학생이 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왔길래 ‘운동화가 없냐’고 물어봤다”면서 “학생이 ‘비가 오면 먼 등하굣길에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가 젖기 때문에 슬리퍼를 신었다’는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만약 금성중이 계속 남아있고 승영이가 금성중으로 배정받았다면, 통학시간을 15분 단축할 수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등교 시간이지만, 15분은 그나마 아침 식사라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동구복지관 김승훈 복지사는 “범일동에는 학생들이 많이 없지만, 학생수로만 따진다면 그 지역의 아이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서 “교육청과 지자체가 합심해 통학차량을 지원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석하·변은샘 기자 hsh03@busan.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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