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자치’와 법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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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섭 법제처장

부산의 ‘밀면’, 통영의 ‘굴’처럼 지역마다 유명한 음식이나 특산품이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런 음식이나 특산품을 그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배송이 발달한 덕도 있지만, 그 지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에도 그 음식이나 특산물을 취급하는 가게나 분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작은 범위에서 시작해 시행착오와 보완을 거치면서 적용 범위를 넓혀가는 것은 성공의 확률을 높이고 위험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국가의 법제도와 정책을 도입할 때도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 1996년 제정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170여 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로 운영해 오던 정보공개제도를 정부가 도입하여 법으로 규정한 것으로서 국민의 행정정보 접근성을 확대한 사례다.

부산의 ‘동백전’, 창원시의 ‘창원사랑상품권’, 남해군의 ‘화전’처럼 요즘은 지역마다 흔히 볼 수 있는 지역사랑상품권도 또 다른 예다. 2018년 당시 64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해당 지역의 소상공인에게만 사용하도록 해서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됐지만, 상품권의 부정 발행과 유통 행위를 제재하는 수단을 조례로는 정할 수 없어 그 운영과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작년 5월 지역사랑상품권의 발행과 유통에 대해 정한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지역사랑상품권은 전국적으로 더욱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지방의 법제도는 지역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물론 국민 전체를 위한 국가정책의 요람이 되기도 한다. 법제처는 이에 주목해 지방자치단체가 자치법규를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 우선 2011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치법규의 제정·개정 내용이나 해석에 대해서 자문을 요청하는 경우 그 법적 쟁점에 대해 의견을 제공하는 ‘자치법규 의견제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요청하면 자치법규 제정안·개정안 전체를 검토하여 개선안을 제공하는 ‘자치법규 입법컨설팅’과 자치법규 입안과 관련된 의문에 대해 신속히 상담을 해 주는 ‘자치법제상담 119’도 실시하고 있다. 연말부터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추진이 부당하게 제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치입법권을 제한하는 법령을 발굴하여 정비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법제처는 불합리하게 주민을 규제하는 자치법규가 없는지 살펴 자치법규의 적법성을 확보하고 주민들의 권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했다. 일례로, 법률의 근거 없이 조례에서 주민자율기구인 자율방범대 구성원이 변경될 때마다 신고를 하도록 규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지방자치단체에 보냈고, 작년 말 해당 규정이 삭제되었다.

돌아오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열매로 그해 10월 29일에 전부 개정된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에는 제헌헌법에서부터 명문화되었던 ‘지방자치’가 다시 국가의 운영원리로서 명시적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방자치의 날’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각자 개성 있는 자치법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지방자치를 구현해 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을 넘어 전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직접 정한 지방자치를 성숙하게 실현해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각 지역에서는 창의적인 정책들이 자유롭게 펼쳐질 것이고, 그 과정에는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국가정책의 요람이 되기도 하는 각 지역의 노력이 국가법령과의 조화 아래 최대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법제처는 때로는 산파(産婆)처럼 때로는 돌보미처럼 자치입법을 살피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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