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의 문학정신과 한국 문학의 길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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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큰 봉우리인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의 숭고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 문학의 길을 여는 작가를 격려하는 제38회 요산김정한문학상 5인 심사위원회가 지난 19일 부산일보사에서 열렸다. 조갑상(소설가) 심사위원장은 “올해 추천작은 어제를 불러내 오늘을 뜨겁게 진단하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총평했다. 그것이 인간을 문제 삼고 시대의 향방을 추궁하면서 그것들과 겨루는 소설의 몫이기도 할 테다. 바로 요산 문학정신에 가닿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발간된 소설에서 추려진 올해 최종 추천작은 9명의 10편이었다. 장편소설이 7편으로 우세했다. 김중미의 , 정지돈의 , 김금희의 , 손홍규의 , 신경숙의 , 이인휘의 , 고광률의 가 장편소설이었다. 소설집은 3편으로 손홍규의 , 김이정의 , 황정은의 이었다. 이들 추천작을 추린 올해 심사위원은 조 위원장을 비롯해 소설가 정찬, 문학평론가 황국명 구모룡 김경연 등 총 5명이다.

38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추천작품 10편 선정
“어제를 불러내 오늘을 진단”
심사위원들 4차례 격론
최종 심사 결과 25일 발표


조갑상 위원장은 총평에 덧붙여 “그런데 부·울·경 작가 작품이 하나도 없어 아쉽다”고 했다. 지역 작가들의 집념 어린 열정적 글쓰기를 촉구한 것이다. 그는 이어 “추천작들을 보건대 일일이 전거를 밝히기까지 하면서 작가들이 자료에 너무 의존해 쓰는 건 썩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여러 문학상을 이미 수상한 작가들이 많아 그들이 요산김정한문학상까지 섭렵하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심사위원들은 “각각의 소설들은 너무나 다양한 모습과 측면을 갖고 있어 읽으면서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라며 그 재미와 보람을 독자들에게 권했다.

김중미의 장편 은 “조세희의 을 잇는 소설로 일제시대 이후 2~3대에 걸쳐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가난에 찌든 ‘은강’(인천 만석동)이 있다는 것을 그리는데 최근 우리 소설들이 당대 삶을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설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정지돈의 장편 도 주목받는 작가의 문제작으로 꼽혔다. “굉장히 독특한 지식인 소설로, 자료 섭렵을 통해 역사 속에 사라져간 사회주의자의 고독한 연대기를 복원한 것으로 작가의 고투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설”이라는 평을 들었다.

이인휘의 장편 은 “노동소설가의 작품으로 얼핏 연애소설, 후일담으로 읽힐 수 있으나 새로운 로컬 공동체, 노동 이후의 가능성, 지역의 가능성을 내다보게 하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손홍규의 것은 장편과 소설집, 2편이 심사에 올랐다. 소설집 는 “주목받지 못한 궁핍한 사람들을 불러내 그들의 슬픔 분노 환멸을 고스란히 체현한 소설로,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그들의 서사를 복구하는 시선이 의미 있다”는 평을 들었고, 장편 는 “전봉준 박헌영 노무현 세월호를 불러내 역사의 큰 상처를 생생하게 환기시켜 인상적이며, 물이 오른 서술로 깊고 밀도 있으며, 치열한 바가 있다”는 평이 나왔다. 황정은 는 형식적 새로움을 갖춘 깔끔한 연작이 좋았다고 했으며, 신경숙 는 표절 사건 이후 첫 장편으로 꽤 주목을 받았다. 고광률 는 ‘오징어게임’ 같은 혈투가 벌어지는 우리 사회를 그려낸 것이고, 김이정 는 다양한 체험을 바탕 삼은 작품이며, 김금희 는 잘 읽히고 잘 쓴 소설이라는 평이었다.

그러나 실제 모든 추천작에 대한 호평과 지적은 엇갈렸다. 그만큼 추천작들은 문제적이었다. 이날 심사위원회는 크게 4차례의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2시간 이상 양보 없는 날카로운 격론을 주고받았다. 요산의 문학정신에 합당한 작품은 뭔가, 각 작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구조 속에서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가, 로컬의 관점이 부족하지 않은지, 작가적 실천도 겹쳐봐야 하는 건 아닌지 등을 놓고 토론이 이어졌다. 뜨거웠고 숨 막힐 정도였다. 최종 심사 결과는 오는 25일 발표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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