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사라진 동네, 인구도 급속 유출… 학교는 ‘인구 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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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진다] ③ 마을의 죽음

‘완전 올수리, 빌라 급매’ ‘단층주택 급매’ ‘대박싼~ 급매 저층빌라’

올 5월 14일 취재진이 찾은 좌천초등학교 주변 주민자율게시판에는 집을 팔겠다는 게시문이 가득했다. 마치 동네를 탈출하려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 했다. 폐교된 좌천초등의 운동장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고, 건물 2층에 걸린 시계는 8시 35분을 가리킨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폐교 주변에는 환한 대낮임에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한동안 이어졌던 거리의 적막을 깬 것은 비탈길을 오르는 칼갈이 장수의 “칼 가이소” 외침뿐이었다.

좌천동 일대에는 2018년 좌천초등을 시작해 2020년 금성중, 올해 초에는 좌천동과 경계 지점에 있는 범일1동의 좌성초등 등 학교 3곳이 폐교됐다. 는 학교가 문을 닫은 뒤 좌천동 일대의 ‘지역소멸지수’ 변화 등을 추적했다. 예상대로 학교가 사라진 지역은 지역소멸지수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당국은 학생이 없어서 학교의 문을 닫는다지만, 학교가 폐교되면 해당 지역의 인구 유출이 더욱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폐교한 좌천초등학교 주변
지역소멸 지수 급속히 악화
집 팔겠다는 게시문만 가득
“젊은 세대 이탈 노인만 남아”


■악화된 지역소멸지수

대도시 학교의 통학구역은 동의 통·반으로 나뉜다. 좌천동은 1~25통까지 구획된다. 좌천초등과 좌성초등이 문을 닫기 전 좌천초등은 8개 통(18~25통)과 좌성초등 8개 통(1통 일부, 3통, 5~10통), 수정초등 9개 통(2통 일부, 4통, 11~17통)으로 통학구역이 나뉘어 있었다. 취재진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좌천동 통별 남녀 연령대 인구 자료를 확보해 지역소멸지수를 구했다. 지역소멸지수는 20~39세 가임기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로 나눈 값을 말한다. 지수는 △0.5 미만 ‘소멸 위험 지역’ △0.5~1.0 미만 ‘주의단계’ △1.0~1.5 미만 ‘소멸위험 보통’ △1.5 이상 ‘소멸위험 매우 낮음’ 등으로 구분된다.

학교가 사라진 곳과 비교적 최근까지 운영된 곳, 건재한 곳의 지역소멸 지수는 확연하게 달랐다. 2018년 문을 닫은 좌천초등과 2021년 초 폐교된 좌성초등의 옛 통학구역 평균 지역소멸지수는 올 5월에 각각 0.29와 0.37로 나타났다. 좌천초등 통학구역은 좌천동 전체 지역소멸지수 0.36보다 낮았고, 좌성초등 통학구역은 좌천동 전체와 비슷했다. 이는 좌성초등이 좌천초등에 견줘 최근까지 학교가 유지됐기 때문에 같은 폐교 지역이라도 지역소멸지수가 다소 양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좌천초등이 사라지기 1년 전인 2017년 7월 통학구역 8개 통 중 좌천동 전체 지역소멸지수 0.46보다 낮은 곳은 20통과 21통, 22통, 23통, 24통, 25통 등 6곳이었다. 올해 5월 현재 좌천동 전체 지역소멸지수 0.36보다 낮은 곳인 18통과, 19통이 추가돼 모두 7곳으로 늘었다. 특히 좌천초등이 위치한 23통과 24통은 지역소멸지수가 유일하게 0.2 미만을 기록해 ‘소멸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8개 통 중 유일하게 20통의 지역소멸지수가 0.39에서 0.72로 대폭 개선됐다. 좌천초등의 폐교 6개월 뒤인 2018년 8월 20통 지역에 257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서 인구가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문을 닫은 좌성초등의 경우 2017년 7월 통학구역 8개 통 중 좌천동 전체 지역소멸지수보다 낮은 곳은 7통과 8통 두 곳이었다. 올해 5월에는 9통과 10통이 추가돼 4곳으로 늘었다.

아직까지 학교가 있는 수정초등의 통학구역 9개 통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9개통의 2017년 7월 평균 지역소멸지수는 0.50 ‘주의단계’로 좌천동 전체지역보다 높았다. 올해 5월에는 0.40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좌천동 전체 지역소멸지수보다는 양호하다. 학교가 ‘인구의 댐’ 기능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사가려고 집 내놨다”

폐교 주변의 지역소멸지수가 악화된 것은 학령기 자녀를 보낼 수 있는 학교가 사라지다 보니 부모 세대인 30~40대도 해당 지역을 떠나는 반면, 추가 유입은 이뤄지지 않아 점차 고령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옛 좌천초등의 통학구역 중 지역소멸 지수가 가장 나빴던 23통은 2016년 7월만 하더라도 30~40대 인구가 96명이었으나 올해 5월에는 59명으로 38.5% 감소했다. 25통의 경우 2016년 7월 30~40대 인구가 105명이었으나, 올해 5월에는 52명을 기록해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물론 해당 지역의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지수 악화가 다른 요인 탓에 촉발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폐교와 지역사회 인구 감소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누적된 통폐합 학교수 증가 때 30~40대 학부모 인구수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소규모 학교 통폐합에 의해 폐교를 많이 양산한 지역일수록 학령기 인구 및 지역의 30~40대 인구 유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해당지역의 주민 또한 학교가 문을 닫은 뒤 인구 유출은 많아도 유입은 드물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좌성초등에 자녀를 보냈던 A 씨는 “학교가 없어질 때 이사간 학부모들이 제법 있고, 집을 내놓은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좌천초등 주변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점이 원장은 “폐교 주변 빌라에 사는 학부모들도 집 팔리면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가려 하지만, 집이 안 팔려서 못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B 씨는 “좌천초등이 있을 때는 아이와 젊은 사람들도 좀 보였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이 다 이사가 노인밖에 없다”면서 “학교가 없어지니 동네가 다 죽어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황석하·손혜림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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