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울경 정치권의 부끄러운 자화상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권기택 서울본부장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다. 시중에는 온통 4개 월 정도 남은 20대 대통령선거 얘기 뿐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관심이 오직 대선에만 쏠려 있다고 할 정도다. 사람들을 만나도, TV를 틀어도 핵심 주제는 대선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그 빅 이벤트에 부산·울산·경남(PK)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울경은 주연은 커녕 조연도 아니다. 그저 방관자일 뿐이다.

20대 대선은 부울경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차기 정권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도 유치해야 하고, 부울경 메가시티와 가덕신공항, 공기업 및 대기업의 PK 이전도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PK의, PK에 의한, PK를 위한’ 정권이 창출돼야 한다. 결코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PK 미래 걸린 20대 대선 다가왔지만
킹메이커와 핵심 요직에 부울경 없어
정치력 다소 부족해도 정책능력 필요해
초선들, 지역 외면한 채 자리에만 혈안
이번 기회 놓치면 부울경 불행해져
유권자들, 정치인 활약상 똑똑히 관찰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유력 주자는 물론 주요 후보 캠프의 요직에 PK 출신이 거의 없다. PK 정치권이 이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 대선이 처음이다. 김두관 김태호 장기표 최재형 하태경 홍준표 등 총 6명의 PK 출신들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도전했지만 경남도지사 출신인 홍준표 의원만 겨우 살아 남아 있다. 나머지 후보들은 중도낙마하거나 컷오프 당해 부울경의 자존심을 심하게 훼손했다.

그렇다고 ‘킹메이커’나 유력 주자의 핵심 측근 중에 PK 출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의 박재호·최인호 의원은 다른 후보를 지지하다가 실패했고, 전재수 의원은 뒤늦게 이재명 후보 측에 가세하긴 했지만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진 않는다. 국민의힘은 더욱 가관이다. 조경태 의원이 홍준표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나머지 PK 의원들은 대부분 ‘변방’에 머물러 있다. 핵심 요직엔 배제된 채 하부 조직의 책임자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장제원(종합상황실장) 안병길(홍보본부장) 의원이 윤석열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가 개인적인 사유로 중간에 그만뒀다.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태호 의원은 24일 윤석열 캠프에 합류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지만 ‘다수의’ 선대위원장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면 ‘집단’의 힘을 빌려야 한다. 역대 대선에선 한 사람의 훌륭한 PK 정치인이 있거나 부울경이 똘똘 뭉쳐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번엔 그 마저도 찾아 볼 수 없다. 유력 킹메어커 중에 PK 출신이 없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고,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었던 ‘연대감’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심정으로 같은 PK 출신 정치인을 음해하는 데 여념이 없다. 실제로 장제원 의원의 아들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하자 일부 PK 정치인들은 노골적으로 장 의원을 헐뜯거나 비난하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부산 출신 모 정치 전문가가 “부산 정치인들은 정말 한심하다. 동료가 어려움에 처했으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 뜯는다”고 했겠는가.

정치인은 두가지 부류가 있다. 정치적 소질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정책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있다. 지금까지 PK 정치권을 지탱해온 양대축이다. 정치력은 다소 약해도 정책적 소양이 뛰어나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헌승(부산 부산진을) 의원이나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에 재직 중인 김도읍(부산 북강서을) 의원이 ‘롱런’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3선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까지 누구보다 지역 현안을 많이 챙겼다. 두 사람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부산 발전에 도움되는 의정활동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21대 PK 정치인들에겐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더욱이 부울경 초선들은 한심하기 그지 없다. 자신의 능력을 전혀 생각지 않고 자리만 생기면 무조건 덤벼드는 ‘당직병(病)’에 걸려 있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마치 자신이 중진 정치인마냥 지역 현안은 내팽개친 채 중앙 정치에만 매달리는 의원도 있다. 심지어 부산 시의원 출신 동료 의원을 무시하거나 깔아 뭉개는 초선도 있다.

지난 21일 사실상 막을 내린 21대 국회 두 번째 국정감사는 PK 정치권의 무기력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국감장을 뒤흔든 ‘국감스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고, 지역 현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바로잡는 정치인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안병길(부산 서동) 의원이 북항 1단계 사업의 트램(노면전차) 구입비용 지원이 어렵다는 해양수산부의 주장을 뒤엎는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둬 체면치레를 했다.

정치인에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다. 5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대선 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정치인 개인은 물론 부울경 전체가 불행해 진다. 여야 PK 정치인들은 부울경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이번 대선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대선이 끝난 뒤 후회해도 소용없다. 한 번 흘러간 물은 되돌릴 수 없다. 800만 부울경 주민들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한 일을 잘 알고 있다”라면서. kt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