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재량” 한마디에… 공공기관 지역 홀대 못 막는 ‘판로지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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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우정청이 부산권역 우체국 무인경비 계약 입찰에서 부산 경비업체를 외면(부산일보 10월 4일 자 5면 보도)하고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까지 끌어들이는 일반경쟁입찰 방식을 결정했다. 지역 상생이 강조되는 공공기관이 중소기업 판로 확보와 지역 활성화를 위한 ‘판로지원법’의 입법 취지를 뒤로했다는 비난이 나온다.

26일 부산우정청은 “부산권역 우체국 무인경비(기계경비) 통합운영 업체 계약을 중소기업자 간 경쟁에서 대기업이 참여하는 일반경쟁입찰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우정청 무인경비 운영 입찰
결국 대기업 유리한 일반 경쟁
“기관 내부 검토 거쳐 결정” 해명
중소기업 우선계약 의무화해야

앞서 지난 8월과 9월 부산 소재 경비업체인 A사는 2회 연속 응찰했으나, 단독 입찰을 이유로 유찰됐다. 이 경우 부산우정청은 업체 심사를 거쳐 A사와 수의계약을 진행할 수 있지만, 결국 지역 업체에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반경쟁입찰을 결정했다.

무인경비업은 2019년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됐다. 공공기관장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중소기업자를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조달 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한다. 경쟁 입찰에서 대기업에 밀릴 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자를 대상으로 ‘지역 업체 활성화’를 법으로 보장해둔 것이다.

하지만 부산우정청은 A사에 대한 업체 평가를 하지도 않고 일반경쟁입찰을 고집하고 있다. 일반경쟁입찰이 진행될 경우 A사 같은 지역 업체가 대기업을 밀어내고 계약을 따내기는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다. 부산 지역에서 20년간 입지를 다져온 A사지만, 대규모 인력과 자본을 내세우는 대기업에 밀릴 수밖에 없다.

A사는 부산우정청 측에 ‘법제처에 관련법 해석을 맡겨보자’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관 내부 검토로 일반경쟁입찰이 결정됐다는 이유다. A사 관계자는 “지역 업체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소기업을 외면하겠다는 뜻”이라며 “약 5년간 대기업과 계약을 맺어놓고 판로지원법의 취지를 저버리고 또다시 대기업을 고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역 사회에서도 공공기관이 지역 상생을 저버렸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한영 사무처장은 “지역 상생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정부의 방침이고 판로지원법도 같은 취지에서 시행이 되고 있는데, 부산우정청의 행정은 이에 역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부산우정청 측은 일반경쟁입찰 방식에 대해 법리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우정청 관계자는 “단독 응찰해 유찰된 업체를 대상으로 수의계약을 할 수도 있지만, 기관 내부 검토를 거쳐 일반경쟁입찰으로 진행해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A사 외 다른 중소기업이 함께 경쟁을 벌였으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단독 응찰이었기 때문에 관련법상 계약 예외조항을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지역 업체 활성화가 기관 재량에 달린 만큼, 부산우정청 뿐 아니라 모든 기관에서도 이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에 대한 입찰 계약을 지역 중소기업이 우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영옥 정담경영전략연구소장(전 부산조달청장)은 “이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선 판로지원법 등 관련법을 개선해야 한다”며 “현재 ‘중소기업자를 대상으로 우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조항을 ‘체결하여야 한다’는 식의 의무 조항으로 바꿔야 지역 업체 활성화를 위한 법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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