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부산, 노인 생활인프라 ‘낙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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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에 사는 박 모(84) 씨는 지난해 골목길에서 발을 헛디뎌 골반을 다친 뒤 외출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시내로 나가려면 버스와 도시철도를 번갈아 타야 하는데 몸이 예전처럼 따라주질 않는다. 외출할 일이 점차 줄어드니 우울감은 커지고 건강도 나빠졌다.

조 모(75·부산 부산진구 연지동) 씨는 틈 나는 대로 서울 막내아들 집에 몇 달씩 머무르다 온다. 단순히 아들을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조 씨는 “서울에는 동네 복지시설에 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하더라”며 “몇 년 전 서울에서 장구, 훌라후프를 배웠는데, 복지서비스가 워낙 좋아서 오히려 ‘없는 사람’일수록 서울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조 씨는 “곳곳에 공원도 많아 산책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이달 65세 이상 인구 20%대 진입
대중교통·녹지공원 접근성 열악
집 밖 사고 발생 비율 절반 이상
경제력 취약 자존감마저 약화
고령 친화 환경 조성 적극 나서야

이달 전국 대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초고령사회(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한 부산. 과연 부산은 노인들이 살기 좋은 도시일까. 노인들이 일상에서 자존감을 잃고, 사회·경제의 중심에서 멀어진다면 도시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산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는데도 위의 예에서 보듯이 고령층을 위한 생활밀접형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부산연구원은 ‘초고령사회 극복을 위한 부산의 주요 과제’라는 정책보고서를 26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노인들은 최근 1년간 평균 1.42회의 낙상사고를 경험했다. 인도, 계단, 횡단보도 등 집 밖에서 발생한 사고 비율이 53.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노인의 외부 환경이 열악한 것이다.

부산 노인의 79.4%가 외출할 때 대중교통(버스·도시철도)을 이용하거나 그냥 걷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용 편의성은 좋지 못했다. 외출 때 가장 불편한 점으로 계단·경사로, 버스나 도시철도 승하차, 앉을 곳 부족 등을 꼽았다.

또 노인들에게 지역사회에 대한 불만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녹지공간과 공원 이용이 불편하다’(22.2%)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특히 신도시로 분류되는 강서구나 기장군의 경우 노인들이 녹지공간으로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요 시간이 길었다. 올해 8월 부산시가 시니어 자문단 40여 명을 대상으로 연 간담회에서도 상습주차로 인한 통행 불편, 커뮤니티 공간 부족, 키오스크 사용의 문제점 등 생활과 밀접한 이슈들이 주로 거론됐다.

부산연구원은 대중교통 연계성 강화, 기계식 이동장치 보급 확대, 부산형 천원택시 도입, 노인 보행 친화 가로길 조성, 커뮤니티 기능 강화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현장에서는 정책 제언만큼이나 실천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 박시우 회장은 “부산시나 정부의 정책적 방향은 맞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발목 잡혀 사업이 속도감 있게 실행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인의 낮은 경제력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부산 노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72만 원으로 2022년 월 최저임금인 191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산 노인들이 자산 소득에 의존하는 비율은 3.4%에 불과하다. 자신의 경제적 수준을 중하~하 수준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73%나 됐다. 부산연구원 배수현 연구위원은 “노인을 경제적 보호의 대상이 아닌 경제적 주체로 살아가도록 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베이비부머 맞춤형 일자리, 노·노 공공 일자리 등 고령 친화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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