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너는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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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독자부장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자주 떠올리는 구절이다.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라서 더욱더 그럴 게다.

어릴 때 시골 골목에는 연탄재가 많았다. 집마다 연탄을 때니 겨울철 대문 앞에는 연탄재가 수북이 쌓이곤 했다. 당시 연탄재를 수거하는 시스템은 없었던 모양이다. 연탄재는 빙판이나,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울 때 마지막 임무를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연탄재 숙제’도 있었다. 학생 1인당 연탄재 두 개를 학교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연탄재의 용도는 테니스장을 만드는 데 쓰였다. 테니스장은 물 빠짐이 좋아야 하는데 운동장의 바닥에 연탄재를 잘게 부수어 깔면 효과가 뛰어났던 모양이다. 연탄재를 가져가는 것은 물론 사각형으로 파놓은 바닥에 깨어 넣는 것도 학생들의 몫이었다. 나중에 완성된 테니스장은 ‘학생출입금지’였던 기억이 유독 남아 있다.

기습 추위에 소중해지는 온기
어려울 때일수록 온정은 풍성
더불어 사는 사람의 지혜로움
올겨울도 따뜻함이 넘쳐나길


요즘에도 연탄을 때는 집이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연탄은 여전히 우리 서민들의 구들장을 데워주는 고마운 존재다. 아파트나 신축 집이야 도시가스나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지만, 오래된 재래식 주택은 아직 연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부산은 ‘연탄은행’이 있어 해마다 이맘때부터 서민들을 위한 기부의 손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이웃을 생각하는 선한 이들이 많은 것은 ‘사람이 원래 착한 존재’라는 확신을 하게 한다. 부산사랑의열매 박영희 모금사업팀장에 따르면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빠졌던 지난해에 오히려 모금된 기부금이 예년보다 많았다고 한다. 박 팀장은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돕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지가 더 강해지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1월 31일로 종료한 사랑의 온도탑은 무려 110도를 기록했다. 부산사랑의열매는 매년 12월 1일부터 다음 해 1월 말까지 약 60일간을 희망나눔캠페인 기간으로 정해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연말이면 구세군이 자선냄비를 거는 것과 비슷하다. 지난해 겨울부터 진행한 나눔캠페인은 부산 지역의 경우 목표 금액이 92억 4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모인 돈은 101억 6000여만 원이었다. 송상현 광장에 마련된 사랑의 온도탑은 여느해보다 후끈했다.

모금의 명세를 보면 개인이나 단체의 기부금이 49억여 원이었고, 기업 기부는 52억 원이었다. 비록 경제상황이 어려웠지만, 공기업 등의 사회공헌 활동은 더욱 활발해진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돼지저금통을 들고 온 어린이, 본인도 힘들지만 더 힘든 이웃을 생각하며 마음을 모은 자영업자가 있었다. 부산장애인직업적응센터 장애 청년들은 1년 동안 모은 활동 수익금을 선뜻 기부하기도 했다. 부산 시민들의 따뜻한 발걸음은 코로나19로 움츠러든 마음을 활짝 펴게 했으며, 추위로 언 가슴을 훈훈하게 녹여냈다.

부산사랑의열매는 “애초 모두가 힘든 경제 상황이라 캠페인 시작부터 모금액을 달성할 수 있을까 우려가 컸지만,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아파하며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시민들이 너무 많아 나눔온도 110도를 달성했다”며 고마워했다.

그런데 아쉬운 소식이 있다. 나눔캠페인이 끝난 이후 부산사랑의열매에 쌓인 온정이 예년만 못하다는 것이다. 올해 9월 말까지의 모금액을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0.8%에 불과하다고 한다. 올해 모금 목표액으로 따지면 올해가 겨우 두어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겨우 59.7%만 달성했다고 한다. 따뜻함이 절실한 실정이다.

부산사랑의열매는 올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배분 사업을 정했다. 시민의 정성을 단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각계 전문가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관한 의견을 모으고, 꼭 써야 할 곳에 기금을 나누고 있다. 물론 기본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식의주를 해결하는 것이다. 절대 빈곤 위험을 완화하고 예방하는 것이 기금 배분 사업의 가장 큰 목표다.

취약계층의 자립 역량을 강화하고, 의지를 북돋는 사업에도 기금을 쓴다. 주거와 환경의 개선은 물론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 특히 아동과 노인, 장애인을 위한 배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과 가난으로 인해 문화 예술의 기회를 접하지 못하는 계층에게도 쓰인다.

검디검은 석탄으로 이루어진 연탄이 빨갛게 불을 밝혀 사람의 살림을 데운 후 제 몸을 태우며 하얗게 사그라진 뒤에도 끝까지 쓰이는 것처럼, 우리의 온정은 ‘타고 나서 다시 기름이 되는 재’다.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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