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이의 제기 없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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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어제, 한 학회로부터 일전에 투고한 논문을 게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위 말해서 제출 논문이 심사에서 탈락한 것이다. 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대개 논문으로 발표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학회가 시행하는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심사서를 읽던 중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논점들을 확인해야 했고, 학회 측에 이의 제기 절차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학회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자신들에게는 이의 제기 절차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답변에는 여태까지 심사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한 사람이 없다는 속뜻도 노골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학회, 투고 논문 게재 불가 통보
‘이의 제기 절차 없다’ 답변 황당

수학능력시험 2000년대 중반
정답에 대한 이견 수용 시작돼

불필요한 자만심 청산하고
자유롭게 이견 교환해야

많은 단체들이 자신들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정당하고 완벽한 것이라고 믿는다. 권위주의 시대의 행정 집단과 국가 권력이 특히 그러했다. 그들은 전문가가 수두룩한 자신들이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처리한 일에 실수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일개 민중의 어설픈 의견쯤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그러한 권위 의식은 시대와 함께 청산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수학능력시험에는 이의 제기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다. 수능시험을 관장하는 기관은 그 어떤 이견도 용납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제시한 답을 유일한 정답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매우 권위적인 태도로 인해, 1점이 아쉬운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정답에 대한 이견을 지닌 교육 현장과 전문가까지도 침묵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았다. 한 학부모는 그처럼 권위 있다는 국가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시절은 이의 제기를 인정하지 않던 시절이라 법정 투쟁까지 감수해야 했는데, 결국에는 국가(해당 기관)이 내놓은 답만 답이 아니라는 승소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른바 복수정답이 인정되었고, 해당 국가기관은 혹독한 검증과 변화를 수용해야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마도 이의 제기 절차를 만들고 정답에 대한 이견을 수용하는 제도를 확립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현재 수능시험에 대한 이의 제기는 너무나 당연한 절차가 되었고, 그 필요성을 의심하는 이도 거의 없다. 해당 기관이 이의 제기를 한 건도 받은 적이 있다는 식의 권위 의식을 과신하는 풍조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한 태도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일은 공정한 일처리였고, 불필요한 자만심을 청산하는 일이었으며, 자유롭게 이견을 교환하고 이의 제기를 정당한 사회적 절차로 수용하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 수능시험은 더 양질의 시험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독재국가로 전락한 많은 나라에도 이의 제기가 없다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독재자들은 민중의 이의 제기가 무지한 자의 푸념이거나 패배자의 넋두리라고 치부하고 있으며, 하찮은 이견을 일소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지금의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러하고, 일본이나 미국의 잘못된 지도자도 그러한 기미를 드러낸 바 있다. 그때마다 그 차이를 가져오는 일은 민중의 반론이고 이견을 가진 이들의 이의 제기였다.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들과 어떻게든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나마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지켜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만간, 수학능력이 시행될 것이다. 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미래의 젊은 세대들도 용트림도 시작될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에서 반론과 이견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 이의 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에게만 이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했으니, 아마도 미래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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