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무죄 판결이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우영 사회부

조교사는 ‘경마 감독’에 비유된다. 경마공원 마방을 운영하며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이끈다. 기수나 마필관리사가 고난도 면허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이 생기는데 고 문중원 기수에게는 꿈의 자리였다. 그는 2015년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결국 2019년까지 꿈을 펼치지 못했다. 한국마사회가 면허 소지자를 상대로 ‘옥상옥’의 개업 심사를 한 결과다. 20분 안팎 PT 발표가 당락을 가르는 이 심사에서 그는 거듭 좌절했다.

2019년 3월 부산경남경마공원 조교사 개업 심사에서 2명이 합격했다. 2018년과 2017년 면허를 딴 이들은 2018년 8~11월 당시 친분이 있던 경마처장에게 PT 자료를 전달하며 검토를 부탁했다. 해당 심사에서 당연직 심사위원장을 맡은 그는 초안을 본 뒤 ‘작년보다 좋아졌다, 준비 잘해라, 디자인에 더 신경 써라, 새로운 것으로 바꿔라, 변화를 줘라’ 등의 피드백을 줬다. 이듬해 경마처장은 이들에게 1, 2등 점수를 줬다.

이메일 등을 조사한 검찰은 공정한 심사를 방해했다며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하고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1심 재판부는 발표자료 검토 사실을 인정하고도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추상적 조언 수준인 데다 지시에 따라 발표자료를 수정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한국마사회가 이듬해 심사 계획을 확정하지 않았다고도 판단했고, 경마처장이 순환 근무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는 점도 거론했다.

판결 뒤 문 기수 유족과 경마 종사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정년을 앞두거나 갑작스레 그만둔 조교사 2명이 있었다”며 “다들 열리지도 않을 심사를 그렇게 준비했겠느냐”고 반박했다. 경마처장은 자리를 유지했고, 심사위원장 피드백을 받고도 내용을 안 고친 게 이상하지 않냐는 반론도 나왔다.

1심 판결에서는 모두 무죄가 나왔지만, 공기업 심사위원장이 심사 자료를 검토해 준 사실은 명확하게 밝혀졌다. 재판부도 판결문에 ‘피고인들 행위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부적절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또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렸다고 밝힌 만큼 무죄까지 고심을 거듭했을 수도 있다.

문 기수는 2018년 심사에서 외부위원들에게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한국마사회 내부위원들의 낮은 점수로 낙방하기도 했다. 그가 ‘마사회에 밉보이면 합격할 수 없다’고 유서에 남긴 말을 이제 누가 쉽게 부정할 수 있을까.

불공정 비판을 받은 조교사 개업 심사는 결국 폐지됐고, 손에 꼽히는 면허 취득자는 합격 순서대로 개업을 하게 됐다. 올해는 2012년 면허를 딴 기수가 10년 만에 조교사로 활동하며 문 기수 대신 꿈을 펼치고 있다. 이제 겨우 1심 판결이 끝났을 뿐이다. 한국마사회 개혁에 발목을 잡으려는 시도는 없어야 할 것이다. verdad@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