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 꿈꾸던 소년이 농부 됐어요”

이성훈 기자 lee777@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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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로 돌아온 청년들, 나를 말하다] 박재민 농부조합 이사장
귀농 생각만큼 쉽지 않지만 다른 분야보다 농업 전망 밝아

귀농 11년차인 박재민 함안농부협동조합 이사장. 박재민 씨 제공 귀농 11년차인 박재민 함안농부협동조합 이사장. 박재민 씨 제공

2013년 1월 첫 아이가 태어나자 20년 만에 들어보는 아이 울음소리라며 좋아하시던 지곡마을 주민들 표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마을 분위기를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인 2012년 10월, 서울에서 경남 함안군 군북면 지곡마을로 옮겨와 터를 잡았습니다. 정착 11년차지요. 제 공식 직함은 ‘함안농부협동조합 박재민 이사장’입니다. 처음에는 이 명함이 다소 어색했습니다만, 지금은 저를 알리는 소개장으로 딱입니다.

2017년 출범한 조합의 설립을 주도했다는 명분 때문에 처음부터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함안군에서 귀농 교육을 받으면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청년과 쌀농사를 짓거나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지역 농부 등 5명이 농촌지역 공동체를 만들자고 뜻을 모은 것이 조합 탄생의 계기였습니다.

생산한 각종 농산물을 공동으로 가공하고 판매하는 것에서부터 농산물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것이 조합 설립 취지입니다. 출범 4년여 만에 조합원이 10명으로 늘었고, 함안지역 청년 4명이 이 조합에서 근무합니다. 조합은 청년 활동 공간인 별별체험장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귀농 11년차인 박재민 함안농부협동조합 이사장. 이성훈 기자 귀농 11년차인 박재민 함안농부협동조합 이사장. 이성훈 기자

사실 저의 귀농과 농촌 정착은 주변의 조언과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1981년생인 저는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우주비행사, 컴퓨터 전문가, 공학 박사 등을 꿈꾸며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창원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싶어 울산 소재 대학의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년 간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IT 쪽보다는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 마음 속에 숨겨 두었던 셰프의 꿈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지요. 일본 요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저는 대학을 중퇴하고, 군대를 마친 후 무작정 일본으로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어학 연수를 거쳐 일본의 조리사 전문학교에서 2년 간 일본 요리를 전공했습니다. 일본 호텔 측의 취업 제안을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있는 대기업 호텔의 요리사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근무 환경이었지만 또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이들 자는 모습 보면서 출근하고, 아이들 자고 있는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과연 가족이랄 수 있을까? 이런 게 행복일까?’라는 생각을 했던거죠. 함께 근무하는 아내와 연애 시절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귀농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스러웠던 건 저와는 달리 농촌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아내가 농업에 대한 경험이 있었고, 아내는 나이가 들면 귀농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답니다. 온라인 교육을 받고 틈틈이 귀농 박람회장도 찾아 귀농에 대한 정보를 모았으나 역시 귀농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기왕 귀농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빨리 돌아올 수 있고, 특히 저(일식)와 아내(한식)가 요리사라는 전문직이어서 언제든지 그게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던 겁니다.

귀농 11년차인 박재민 함안농부협동조합 이사장. 박재민 씨 제공 귀농 11년차인 박재민 함안농부협동조합 이사장. 박재민 씨 제공

귀농을 위해 두 사람이 동시에 사표를 냈습니다. 나름 준비된 귀농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가서,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 등등 모든 게 고민이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지곡마을에 임대 중인 빈집이 있었고, 부근에 텃밭도 있어 초보 귀농인에게는 안성맞춤이겠구나 생각했죠.

저희 부부를 위해 지곡마을 주민들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농사일을 알려주시고, 작은 논이나 밭도 무료로 빌려주시더군요. 동네 어르신들의 이런 도움으로 제가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저는 콩 재배용 농지 1만 5000평과 단감밭 1200여평을 임대해 경작하고 있습니다. 전직 요리사라는 직업을 살려 재배한 콩과 찹쌀 등을 활용한 밀키트(간편식 요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김장과 먹거리 체험 등 계절별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귀농과 귀촌은 쉽게 생각할 게 아닌 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확고한 신념은 농업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더 전망이 밝다는 것입니다.

첫 째와 두 살 터울인 작은 아이(딸), 아내와 저 네 식구가 저마다 재미있는 농촌 생활에 푹 빠져 여유롭고 알찬 시간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귀농은 1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성훈 기자 lee777@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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