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형상미술, 1980년대 틀 속에 가둬 두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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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의 급진성 혹은 진정성 / 강선학

부산형상미술의 가치를 재조명한 평론집이 나왔다. 무려 1152쪽, 묵직한 책 무게만큼 바라보는 시선도 진지하다. <한 도시의 급진성 혹은 진정성-부산형상미술>은 미술평론가 강선학의 16번 째 미술평론집이다.

미술평론가 강선학의 16번째 미술평론집
형상미술 가치 재조명·창조적 이해 요청

저자는 서문 첫 문장에서 ‘부산형상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일련의 작품들, 혹은 대상들은 어디까지 확장될까’를 묻는다. 이번 평론집은 부산이라는 지역성에 갇혀 제대로 된 시대적·조형적 의미를 평가받지 못한 부산형상미술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형상미술은 1980년대 부산미술의 대명사이지만 저자는 부산형상미술은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닌, 한 사회와 역사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고 믿는다. 1960~1970년대 군사독재로 예술가들은 사회적 상황을 드러내는 데 있어 한계를 마주했다. 이때 하나의 저항적 세력으로 나타나는 곳에 부산형상미술이 있었다.

저자는 부산형상미술은 구상·추상· 민중미술의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작업으로, 기존하는 그리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사유를 요청하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1980년대 부산미술 조명전 ‘거대한 일상: 지층의 역전’에서도 기존의 미술언어 대신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움직임’으로 부산형상미술을 해석했다. 저자는 부산형상미술이 이념이나 운동보다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 일상에 드러나거나 은폐된 개인적인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움직임이라고 했다.

저자는 부산형상미술의 재해석과 창조적 이해를 요청한다. 1980년대 당대적 의미로 묶어두지 말고 시대로부터 해방시키고, 창의적 해석으로 작품에 잠재된 의미를 해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캐리 솔 모슨과 캐릴 에머슨의 <바흐친의 산문학>에 등장하는 ‘시대 자체는 ‘열린 총체성’임에도 위대한 작품들을 ‘시대로 에워싸게’ 되면 그 작품들은 빈약해진다’는 글을 인용한다. 부산형상미술이 시대에 발 묶이지 않고, 그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부산형상미술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는 날카롭게 펜을 들었다. <월간미술> 1994년 10월호에 나온 좌담 내용을 비판한 ‘부산의 형상미술을 왜곡하지 말라’에서 저자는 부산미술의 정체성과 성과를 부정하는 발언이 무지와 서울문화 패권주의를 보여주는 것임을 지적한다.

책에는 ‘부산, 80년대 형상미술전’(1988년) ‘부산사람’전(1991년) 등 여러 전시와 지역 작가의 작업을 비평한 글이 포함된다. 2부에 실린 ‘묶을 수 없는 부정의 미학’은 저자가 정진윤, 예유근, 김응기, 배동환, 김춘자, 허위영 작가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8부에서는 1980년대 미술운동에 대거 등장한 여성 작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10부에서는 ‘어디까지가 부산형상미술인가’를 질문하고, 지역의 젊은 작가를 소환해 부산형상미술의 길을 열어둔다. 강선학 지음/뮤트스튜디오/1152쪽/4만 5000원.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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