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20대 대선, 부울경의 선택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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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편집국 부국장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약 보름 뒤면 끝난다. 메가시티 출범을 앞둔 부울경이 전국적인 접전지로 꼽힌다. 이 지역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선 투표 자체부터. 이번 대선을 두고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두 거대 정당이 기존 정치 문법 밖의 후보를 선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비호감이건 네거티브건 진흙탕이건, 대선은 국가권력 최정점을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하는 일이다. 돌아보면 민주주의 허울을 쓴 어느 나라에서나 유권자의 정치 혐오와 냉소, 무관심이 기득권 정치세력의 자양분이었다. ‘기권도 선택’이라는 말은 겉으로는 더러운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시크한 선언처럼 들리지만, 결국 그 선택으로 득을 보는 쪽은 정치판을 오염시킨 기득권 세력이기에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 나물에 그 밥’, ‘도토리 키재기’라고 싸잡기는 쉽지만 유권자로서의 권리 위에 잠자는 행위나 다름없다. 깨어 있지 않으면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보호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철저히 비교하고 따져, 내가 기권하면 내가 더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된다는 생각으로라도 투표장에 가야 한다.

기권은 유권자 책임 망각 처사
투표 기준 세우고 후보 비교를

핵발전 늘리겠다는 야당 후보
원전 폐기물 임시저장 당연시

후손 살 세상 어떻게 물려줄지
지속가능성 차원의 선택 중요


자 이제 투표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기준을 세워보자. <부산일보>는 지난 7일부터 21일까지 부산 10대 현안에 대한 각 후보 캠프 입장을 설명하는 ‘딥풀이’를 연재했다. 이 가운데 기자의 눈길을 끈 주제는 16일 소개된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각 후보 입장이었다.

부산은 지난달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기존 21km에서 30km로 확대했다. 울산은 이미 2015년 30km로 넓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핵발전소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시민사회에서 비상계획구역 확대 요구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에 걸쳐 지어진 고리·신고리 핵발전소로 인해 부산·울산 대부분 지역이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됐다. 지금도 부울경 시민들은 간간이 들리는 국내외 지진 뉴스에 머리카락이 쭈뼛해진다. 게다가 핵발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폐연료봉 등 고준위핵폐기물은 방사능 반감기가 수십만 년이다. 세계 핵발전 70년 역사에 아직 영구 핵폐기장이 없을 만큼 고준위핵폐기물 영구 저장 시설은 안전한 부지와 주민 수용성 확보가 어려운 핵발전 업계의 숙제다. 이런 고준위핵폐기물이 450만 인구의 부산·울산 한복판 고리핵발전소 임시저장시설에 93.3% 들어차 있다. 1983년 영구폐기장 부지 탐색을 시작한 핀란드는 내년 완공까지 40년이 걸렸다. 우리는 지금 시작한다 해도 언제 영구폐기장을 만들 수 있을지 예상조차 어렵다. 핵발전 기조를 잇거나 확대하겠다면 이 폐기물 처리 계획부터 밝히는 게 순서다. 화장실도 없이 어떻게 집을 짓겠다는 것인가.

이런 부울경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윤석열 후보는 1월 25일 SNS에서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을 공약했다.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해서도 그는 원전 내 임시저장이 불가피하고, 영구폐기장 확보 절차를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핵발전소를 더 짓겠다면 전력 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에, 솔선수범 차원에서 청와대나 여의도 주변에 짓는 것이 타당하다고, 탈핵 진영에서는 주장한다. 윤 후보가 수도권 방어를 위해 추가 배치하겠다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도 경북·충청권이 아니라 수도권에 배치해야 한다고, 비수도권 시민들은 생각한다. ‘위험은 지방에, 이익은 수도권이’라는 가치관에 젖은 것 아닌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재명 후보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이 있으므로 영구폐기장 부지 공론화에 나서 핵발전소가 영구폐기장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겠다고 답했다. 과학기술을 강조한 안철수 후보는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을 속히 확보해 핵폐기물 95% 감축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영구폐기장 확보 과정도 지난하지만 폐기물을 더 만들지 않는 게 우선이다. 또 폐기물 양을 20분의 1로 줄이는 재처리 기술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일 뿐이다. 탈원전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심상정 후보는 핵발전이 이미 미래 에너지원에서 탈락했다며 핵발전소 내 임시저장시설 증설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2015년 부산시의회와 함께 일본 후쿠시마 현지 취재를 다녀온 기자는 사고 발전소에 2km 정도 다가갔을 때 방사선계측기를 뚫고 귀를 찢을 듯 쏟아지던 경고음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2017년 11월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과 여진은 양산단층 주변 부울경 시민들에게 ‘안전’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망치지 않고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 경고처럼 이번 세기가 지구의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짧게는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돼야 하지 않을까.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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