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바닥, 그보다 어두운 바닥을 치는 ‘육탁’ 소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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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 시인 일곱 번째 시집 ‘육탁’

소월시문학상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한 경남 창원의 배한봉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여우난골)을 냈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은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육탁’ 중에서) ‘육탁(肉鐸)’이라는 말이 저릿저릿하다. ‘목탁(木鐸)’처럼 삶의 바닥을 치는 온몸이 ‘육탁’이다. 그것은 처절하게 살아 펄떡거리는 소리를 낸다.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육탁 같다.’(48쪽) ‘육탁’은 여러 해 걸려 찾아낸 ‘그의 단어’다.

짓무른 무화과·핏자국…
호락호락하지 않은 우리 삶
비유와 상징적 표현 ‘눈길’
온몸 부서지는 울음 받아줄
‘육탁의 나무’로 위로 건네

무엇 때문에 육탁인가. “온몸 부서지고 더 칠 바닥조차 없어서 그 바닥의 힘으로 살아야 할 때 나오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센 힘이다. 그 힘으로 허방을 건너본 사람이 ‘육탁’의 맛을 본 사람이다.”

삶의 바닥을 치는 것을 통상 ‘절망’ ‘나락’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거기서 생의 제일 센 힘이 나온다는 ‘위로의 강한 역설’을 직조한다. 더 깊은 바닥, 더 깊은 절망일수록 육탁을 치며 튕겨 오르는 힘이 세다는 거다. 삶의 바닥에 이른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돈을 벌지 못하는 생활은 애처롭고’ ‘고단함과 굴욕은 삶 어느 구석에나 다 웅크리고 있’(85쪽)기 때문이며, 그래서 ‘내 생애에서 피로하지 않은 날이 있었는지’(90쪽) 하는 자탄도 나오는 거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우리 삶에 대한 그의 상징과 비유는 아프고 아름답다. 어떤 삶은, 과육이 흘러내린 무화과가 비 맞는 꼴 같기도 하단다. ‘꽃 시절도 없이 살’았는데 ‘뚝뚝, 제 안에 고인 슬픔을/빗물로 퍼내는’(44쪽) 짓물러진 무화과 같다는 거다. 또 저마다의 마음 속 꿈이 현실 속에서 기진맥진할 때 그 꿈은 별이 되지 못하고 ‘장롱 뒤편 벽지에 곰팡이 얼룩’으로 전락하는데 ‘별들은 장롱보다 거대한 절망으로 캄캄하게 가려진 벽면에 피를 흩뿌린다’(56쪽)는 것이다. 우리 삶의 기진맥진한 얼룩은 뭔가. 놀랍다. 꿈이라는 별이 흩뿌려놓은 핏자국이라는 거다.

하지만 더 놀랍게도 얼룩과 핏자국으로 엉기고 짓물러지면서 우리 삶은 웅숭깊은 삶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예컨대 ‘쩍쩍 금 간 논바닥’ 같은 발바닥이 그렇다. 그것은 ‘균열로 기록된 세월의 서책’이며 ‘새끼들 배불리 먹이면 맨발도 아프지 않던 그 생애의 문장’(96쪽)이라는 거다. 또 ‘쭈글쭈글 주름살이 된 껍질’도 ‘몸의 모든 실핏줄을 타고 터질 듯 팽팽하게 흐르는 내면의 고통 다스’리고, ‘온갖 먼지, 온갖 상처/전부 받아들여 삭인’(46쪽)다고 그리 된 거란다. 시인은 그것에서 ‘소금’을 읽어낸다. ‘짜디짠 삶의 주름, 그 깊은 골짝에서/고단을 잊은 기쁨이 은싸라기로 쏟아지’(106쪽)는 것이 소금이다. 시인의 시적 다짐은 단단하다. ‘염전의 소금산 같은 시를 쓰자’(107쪽).

그러니 온몸 부서지고 바닥을 치면서 실컷 울어야 한다. ‘비가 나무를 때리며 운다. 하염없이, 마구, 밤새도록 시퍼렇게 멍들도록 나무를 때리며//운다.//내가 내 울음의 입구와 출구를 모르듯 비가 왜 저렇게 우는지, 언제 그칠지 나는 모른다.//(중략)//이렇게라도 주먹질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의 눈물을, 나무는 온몸으로 다 받아주고 있다.’(132쪽) 비는 밤새도록 나무를 때리며 울고, 나무는 온몸으로 그 울음을 ‘육탁’처럼 다 받아준다. 우리 마음은 비가 되어 울고, 우리 몸뚱이는 ‘육탁의 나무’처럼 그 울음을 다 받아낼 것이다. 그리고 비 갠 아침 강에 서서 ‘사랑의 눈물이/가 닿는 세계’를 우리는 지켜볼 것이고, ‘흐르는 물은 반드시 바다에 가 닿는다’(15쪽)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될 거란다.

시인은 “어둠을 밀며 흐르는 물이 가 닿는 눈부신 바다는 시가 가 닿고 싶어 하는 궁극”이라며 “‘한 그릇 국수’ 같은 시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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