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자 이성희 ‘거울, 그림자 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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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철학적 통찰 풀어내

집합론과 양자역학에서는 한 점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것과 엇비슷하게 한 점의 그림 속에는 온갖 수수께끼들이 마녀의 가마솥처럼 뒤끓고 있다는 거다. 미학자 이성희는 그림의 온갖 수수께끼를 들여다보는 창으로 거울, 그림자, 꿈을 택했다. 최근 그가 낸 책 이름이 (인타임)이다. 동서양의 그림 70여 점이 시를 쓰고 철학을 하는 이 미학자의 통찰 속에서 독자와 맞닥뜨린다.

거울, 그림자, 꿈이란 테마는 하나 같이 만만찮다. 클림트의 ‘죽음과 삶’에서 왼쪽에 죽음의 해골이 방망이를 들고 있고, 오른쪽에는 사람들이 뒤엉킨 채 잠들어 있으며 그중 한 소녀만이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을 뿐이다. 그 소녀는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죽음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거다.

이성희는 말한다. “삶과 죽음, 현실과 꿈, 안과 밖은 뫼비우스 띠나 클라인 병처럼 서로 이어진 미로다. 이런 ‘되먹임’이야말로 플라톤 이후 최대의 발견으로, 생명 현상의 일반적 패턴이 그렇다. 그것은 모든 이원 대립을 해체하는 유마 거사의 불이(不二), 장자의 신비로운 동일성, 즉 현동(玄同)이지 않을까 한다.” 이를테면 삶은 일장춘몽이면서 일장춘몽이 아니라는 거다.

렘브란트는 대립적인 ‘빛과 그림자‘를 절묘하게 구사한 대가다. “렘브란트의 ‘웃는 자화상’에는 깊은 심연의 어둠(그림자)과 신비한 빛이 교차한다. 어둠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빛으로 피어나는 발광체의 웃음이 그의 ‘웃는 자화상’이다.”

삶에는 깊은 어둠이 있는데, 그 어둠이 쌓이고 쌓여 빛과 웃음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어둠과 빛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아픔과 기쁨, 슬픔과 환희, 그리고 희노애락애오욕이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이겠다. 그 속을 지날 때 우리는 그것을 미로라고 말하는데 실은 이 미로가 삶의 묘미라는 거다. 그 묘미를 맛볼 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삶은 일장춘몽”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다.

이성희는 “그림 속에는 풍습과 이데올로기, 무의식의 지하창고, 예기치 않은 깨달음, 황홀한 여정이 있다”며 “곧 봄이 오면 새끼 꼬듯이 날아가는 나비를 보면서 꿈과 현재가 이어지는 순간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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