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기 없는 올림픽 시상식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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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스포츠부장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20일 막을 내렸다. 선수들의 땀·눈물·노력이 빛나야 하지만, 편파 판정 논란과 약물 스캔들로 더 기억되는 올림픽이 된 듯하다. 적어도 한국인들에겐.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폐회식에서 연출됐다. 폐회식 도중 크로스컨트리 남녀 매스스타트 종목 시상식이 열렸다. 이 종목은 하계올림픽의 마라톤과 비슷한 의미를 가져 폐회식에서 메달을 수여한다. 그런데 크로스컨트리 남자 50km 매스스타트 시상식에선 금메달리스트의 국기와 국가가 사라졌다.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깃발이 올랐고, 러시아 국가 대신 러시아 출신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울렸다. 시상대 맨 위에 선 금메달리스트의 표정은 미묘했다. 영광의 자리였지만, 웃음끼는 없고.

서울 올림픽 벤 존슨 도핑 적발 연상
베이징 올림픽 발리예바 ‘약물 파동’
CAS, 원칙 없는 출전 허용이 더 문제
‘아동학대’급 장면 전 세계로 생중계

금메달을 딴 알렉산더 볼슈노프의 조국 러시아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직전 국가가 개입해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투여하고, 샘플을 조작·은폐한 사실이 발각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국기와 국가 사용이 금지되는 징계를 받았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따르면 2016년 당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러시아 선수의 샘플이 643개에 달했다고 한다.

이런데도 또다시 러시아 출신 선수가 도핑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번 올림픽 최고 스타로 꼽히던 피겨스케이팅의 카밀라 발리예바가 도핑 검사에 걸린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구나 발리예바의 나이는 이제 만 15세에 불과하다.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도핑 스캔들은 88 서울 올림픽의 벤 존슨 사건일 것이다. 30여 년이 지났건만, 개인적으로도 당시 기억이 선명하다. 정확한 날짜는 1988년 9월 24일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기 전 학교 TV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100m 달리기를 시청했다. 미국 칼 루이스와 캐나다 벤 존슨의 ‘세기의 대결’. 결과는 존슨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9초79’라는 세계신기록과 함께.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트랙을 돌던 존슨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존슨의 위풍당당함은 3일 만에 끝났다.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일종이 검출된 것이다. 금메달은 박탈돼 2위 칼 루이스에게 돌아갔다. 루이스는 1984년 LA 올림픽에 이어 100m 2연패에 성공함으로써 명실공히 ‘육상의 전설’로 남게 됐다. 존슨의 챔피언 등극과 약물 파동은 당시 전 세계로 타전되며, 중장년층에겐 지금도 88 서울 올림픽은 ‘존슨과 약물’로 기억된다.

발리예바는 존슨 이후 올림픽에서 약물 파동을 일으킨 최고 스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도핑 규정을 위반한 것이 확인됐음에도, 발리예바의 피겨 여자 싱글 출전을 허용한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판결은 따져봐야 할 일이다.

CAS는 발리예바가 만 16세로 세계반도핑기구의 정보공개 보호대상자란 이유로 경기 출전을 승인했는데, 이 결정은 더 큰 논란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종반에 접어든 올림픽을 향한 시선은 온통 발리예바에게 집중됐고, 피겨 여자 싱글에 출전한 다른 선수들은 ‘들러리’처럼 돼 버렸다. 이 종목 금·은·동메달리스트도 발리예바에 묻혀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발리예바가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기도 만무, 결국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잇따라 넘어지며 4위에 머물렀다. 고개를 숙이고 아이스링크를 빠져나오는 발리예바를 향해 코치가 윽박지르는 장면은 더욱 가혹했다. 마치 ‘아동학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피겨 전설’ 김연아의 글처럼 ‘예외없는 원칙’을 적용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장면이다. CAS가 나이를 이유로 원칙 없이 발리예바의 출전을 허용하는 바람에 세계인들은 ‘소름끼치는 장면’(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안방에서 보게 됐다. 약을 먹인 주변 어른들, 원칙 없는 결정을 내린 어른들 때문에 어린 선수는 더 큰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결국 이번 약물 파동은 어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참고로, 벤 존슨 대신 금메달을 받았던 칼 루이스도 후일 약물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3년 미국올림픽조직위원회(USOC) 약물관리국장을 지낸 웨이드 엑슘이 “서울 올림픽 대표 선발 과정에서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루이스가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루이스에게서 미량이지만 수도에페드린·에페드린·페닐프로파놀라민 세 가지 금지약물이 검출됐으나, USOC는 ‘우연히 천연 보충제를 섭취했을 뿐’이라는 루이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고 한다. 당시 규정대로 루이스의 출전이 금지됐다면 올림픽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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