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선과 만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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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萬人)은 숫자 개념으로 1만 명을 뜻하기도 하지만 통상 ‘수없이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譜)을 만인보라고 일컫는 것도 이런 이유다. 결국 인간 군상에 대한 소회인 만인보는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남길 수도 있고, 머리와 가슴에 담을 수도 있다. 살아가는 모습, 생각하는 방식, 남다른 특징, 간절한 염원,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미래의 모습 등 수많은 사연과 생각들이 만인보에 담길 것이다.

문화예술계에서 만인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고은 시인을 떠올린다. 고은은 1986∼2010년 라는 연작 시집 30권에 5600여 명을 등장시켰다. 이번엔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김홍희가 만인보 작업을 시작해 화제다. 부산 해운대에서 작업 중인 김홍희는 향후 10년 동안 우리 시대 1만 명의 얼굴을 흑백 사진으로 기록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진예술역사에 남을 10년의 대작, 어떤 내용을 담은 만인보가 탄생할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구나 자신만의 만인보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족, 동료, 주민, 같은 국가에 속한 국민들, 지구촌의 다양한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만인보는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의 주관, 사유 폭과 시야의 확장성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을 갖는다. 동일한 사안이라도 이렇게 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입했는지, 어떤 곳에 머물면서 지켜봤느냐에 따라 같은 시대와 장소에 있더라도 저마다의 만인보 내용은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 시대를 관통하는 큰 사건, 그 시대가 갖고 있는 큰 물줄기가 촉발시킨 것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도 수없이 다양한 만인보가 탄생할 수 있다. 더욱이 이미 SNS와 유튜브 등은 지구촌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만인보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특히 대선을 앞둔 최근 큰 관심을 끄는 만인보가 있다.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만인보다. 대선이 임박한 현재까지 그들과 캠프 사람들은 어떤 만인보를 가슴에 기록했을지 궁금하다. 그들이 마스크에 가려진 이 시대 사람들의 얼굴에 서린 아픔과 절망, 열망을 최대한 정확하게 읽어 냈기를 바란다. 만인보를 제대로 기록한 당선인이라야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영철 문화부장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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