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책 안 읽는 사회’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천영철 문화부장

모처럼 만난 후배는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재미있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너무 많아요.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도 살펴봐야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라고도 했다. 한 동료는 잠을 못 자서 힘들다고 했다. 넷플릭스의 세계에 푹 빠져 퇴근 이후나 휴일엔 각종 시리즈물을 밤새 정주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지인은 “넷플릭스만 해도 버거운데 OTT 업체가 늘면서 너무 바빠졌다“고 말했다. 세 명의 말을 종합하면 “시간이 날 때마다 동영상을 본다”는 것이다.

하루는 24시간이다. 직장인의 경우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등을 제하면 개인이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뭔가 새로운 것에 시간을 투입하려면 기존 관심사항에 투입하던 시간을 줄여야 한다.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줄여 넷플릭스 등에 할애했을까. 코로나19 시대 이후엔 대인 접촉이 많이 줄었다. 아마 타인을 만나야 하는 소통의 시간들도 넷플릭스에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코로나19 시대가 되면서 살짝 기대했던 것이 있었다. 팬데믹은 안타깝지만 독서량은 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책을 읽는 시간이 늘기는커녕 되레 그 시간들조차 넷플릭스 등에 빨려 들어가 독서율 자체가 초토화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성인 절반 이상 책 한 권도 안 읽어
넷플릭스 등 인기에 독서율 초토화

읽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 개인 늘면
진실 정확하게 인식할 힘도 떨어져
속이면 속는 ‘우민 사회’ 도래 우려
‘중대 재앙’으로 규정, 대책 서둘러야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19세 이상 성인의 2020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의 연간 종합 독서율이 47.5%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성인 둘 중 한 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 의미다. 성인 독서율이 5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 독서실태 조사는 격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번 조사는 코로나 시대의 독서 현황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성인 독서율은 2017년 62.3%에서 2019년 55.7%로 떨어졌다. 2021년엔 직전 조사보다 8.3%포인트나 더 하락했다. 2017년부터 따지면 14.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2021년 연간 종합 독서량도 2019년보다 3권 감소한 4.5권에 그쳤다. 독서율은 왜 이렇게 해마다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일까. 응답자들은 독서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6.7%)와 ‘다른 매체·콘텐츠 이용’(26.2%)을 꼽았다. 학생들도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 게임 등 이용’(23.7%)을 가장 큰 독서 장애라고 응답했다. 결국 매체 이용 다변화가 독서율 하락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년 뒤 또는 더 길게 잡아 10~50년 뒤의 독서율과 독서량은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등은 ‘시민과 지역 중심 출판독서문화를 위한 정책 간담회’를 개최했다. 독서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 등으로 지역의 독서·지식산업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독서율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출판 등의 전문가들은 이 상태로 가면 독서율이나 독서량은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독서율과 독서량 감소는 왜 충격적일까. 성인 둘 중 한 명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 것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독서의 대상인 종이책과 전자책 등 책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은 무엇일까. 책은 사유와 지식을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일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본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읽는 행위는 스스로 사유한다는 의미다. 읽는 이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기존 지식 체계에 어떤 ‘화학적인 변화’와 유사한 자극이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독서가 삶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해석, 제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OTT나 게임 등도 지식을 전달하고 사유를 촉발시킬 수는 있지만 책이 가지는 강력한 기능과 동일할 수는 없다.

책은 인류가 수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그동안 사유하고 기록한 것들의 종합적인 결과물이다. 이 결과물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삶을 주체적으로 제대로 살아가려면, 속여도 속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책을 통해 정신을 부단하게 확장하는 수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현재 우리 사회는 무지를 넘어 지성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반지성주의가 일반화됐다. 진실과 맥락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조차 상실하고 있다는 징후도 많이 포착된다. ‘읽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 개인’이 많아지면 ‘읽지 못하고, 사유하지 못하는 우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도래할 우려가 크다. 독서율의 가파른 감소세가 출산율 하락이나 코로나19 확산보다 훨씬 무서운 중대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cyc@busan. 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