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헝가리, 3만 원 드레스 입고 미스 유니버스 출전한 속사정?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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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를 대표해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한 여성이 헝가리 전통의상 대신 3만 원짜리 저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일 때문에 헝가리가 시끌벅적하다. 처음에는 이 여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나중에 진상이 밝혀지자 화살은 대회 주최 측을 향하고 있다.


2021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3만 원짜리 자라 드레스를 입은 빅토리아 야즈민. 2021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3만 원짜리 자라 드레스를 입은 빅토리아 야즈민.

헝가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람은 지난해 11월 말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로 선발된 빅토리아 야즈민. 그녀는 죄르에서 태어났지만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21년 부다페스트로 돌아간 뒤 처음에는 모델로 활동하다 지난해 연말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대회에 출전해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헝가리의 영어신문인 <데일리뉴스 헝가리> 등에 따르면 야즈민은 12월 13일 이스라엘 에일라트에서 열린 제70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헝가리 대표로 출전했다. 사건은 이 대회의 여러 행사 중 하나인 민속의상 경연에서 벌어졌다. 모든 참가자가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행진하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야즈민은 헝가리 전통의상인 마티요가 아니라 아주 낯설고 이상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손쉽게 살 수 있는 스페인의 중저가 브랜드 ‘자라’ 제품이었다. 희한한 드레스를 입고 나온 그녀를 본 관중석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론 보도를 통해 소식을 들은 헝가리 사람들은 분노했다. 헝가리를 대표해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한 야즈민이 조국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모욕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왕관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스 유니버스 푸에르토리코의 화려한 전통의상. 페이스북 미스 유니버스 푸에르토리코의 화려한 전통의상. 페이스북

참다못한 야즈민의 부모가 기자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부모에 따르면 그녀는 원래 헝가리 의상 디자이너인 리처드 알렉산더 아틀리어가 200만 원을 들여 만든 전통의상을 입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틀리어가 코로나19 때문에 제때 이스라엘에 입국하지 못하는 바람에 대회 전날까지도 옷을 전달받지 못했다.

드레스를 택배나 인편으로 받을 수는 있었지만 옷을 야즈민의 체형에 맞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옷만 오고 아틀리어가 오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야즈민은 대회 참가를 포기하려고 생각했지만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주최 측이 위약금을 거론하며 참가를 종용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무대에 올라야 했다.

옷을 구할 방법이 없었던 야즈민은 궁여지책으로 호텔에서 부모로부터 온라인 송금을 받아 온라인 쇼핑몰에서 빨간색 자라 드레스를 사서 입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3만여 원에 불과한 옷이었다.


2021년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빅토리아 야즈민. 페이스북. 2021년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빅토리아 야즈민. 페이스북.

야즈민은 전통의상을 입지 못하는 대신 헝가리 국기를 들고 무대를 행진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30시간 가까이 한숨도 잘 수 없었고 무대에서는 너무 긴장했던 탓에 그녀는 내려오자마자 탈진해 쓰러져 긴급히 달려온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직행했다.

침묵하던 야즈민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왜 그동안 입을 다물어야 했는지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대회를 앞두고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주최 측과 쓴 참가 계약서에 ‘각종 행사와 관련해서 벌어진 일에 대해 절대 외부에 말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헝가리 전통의상이 대회 날짜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언론이나 주변 지인에게 알릴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야즈민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출전자들은 메이크업 전문가, 스타일리스트 등으로 이뤄진 지원 팀을 데리고 이스라엘에 갔다. 하지만 야즈민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관리해야 했다.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주최 측이 지원해 준 것이라고는 이코노미석 왕복 항공권을 구입해 준 게 전부였다. 다른 비용은 모두 야즈민이 부담해야 했다. 게다가 다른 나라 참가자들은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야즈민에게는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대회 종료 이후 3주라는 짧은 시간밖에 없었다.


2021년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빅토리아 야즈민. 페이스북 2021년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빅토리아 야즈민. 페이스북

야즈민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숨겨졌던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미스 유니버스 주최 측은 나에게 입을 다물라고 요구했다. 변호사를 통해 왕관을 박탈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을 내게 뒤집어씌우고 있다”면서 “아버지는 늘 명예와 친절, 존경을 중시하라고 가르쳤다. 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 왕관을 잃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내 왕관을 빼앗아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의 명예와 자존심을 박탈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야즈민이 자라 드레스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진상이 드러나자 그녀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5년 미스 유니버스 헝가리였던 산드라 프록샤는 “야즈민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 사실 미인대회 참가자는 시키는 대로 옷을 입어야 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모든 결정은 대회 조직위원회가 내린다”고 말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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