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선 후보·안갯속 구도·배우자 리스크 … 초유의 ‘낯선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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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본 3·9 대선 레이스

지난해 12월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왼쪽) 씨와, 지난달 과잉 의전 논란과 관련해 사과하는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 부산일보DB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한마디로 ‘낯선’ 선거였다. 지난해 10월 10일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여당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한 달여 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1야당 후보로 뽑히면서(11월 5일) 막이 올랐다. 거대 양당에서 국회 경험이 없는 ‘0선 후보’의 예상 밖 등장으로 과거 선거 경험과 전략은 무용지물이었다. 지지율 1·2위 후보가 수시로 바뀌면서 안정적인 유력 후보가 나타나지 않는 안갯속 구도였다.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수많은 생활밀착형 미세 공약이 그 자리를 채웠다.


대선 여론조사 결과 ‘깜깜이’ 판세
정권교체 여론·현 대통령 선호 맞서
유권자들, 후보에 ‘비호감’ 분출
기존 신문·방송은 힘 못써
여가부 폐지 등 젠더 갈등 심화

■요동친 판세, 끝까지 오차 내 초접전

이번 대선의 ‘깜깜이’ 판세는 올해 1월 7일부터 이달 2일까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올라온 1162개 여론조사 결괏값 평균(MBC 분석)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1.2%,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43.6%, 사퇴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7.2%,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6%로 집계됐다. 지지후보가 없다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은 4.1%였다. 1000명 응답 기준의 평균 오차범위가 ±3.1%포인트(P)라는 점에서 1, 2위 격차가 통계적으로 ‘동률’이라는 의미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 중 누가 승리해도 여론조사가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10% 안팎을 넘나들던 지지율 3위 후보가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사퇴, 단일화를 만들며 여론 지형의 모호성은 더 커졌다.

정권교체 여론과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모두 높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정권교체 지지율은 정권연장 지지율을 상회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높았다. 정권연장 지지율과 대통령 지지도가 동조화하지 않은 셈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를 넘나들며 직선제 이후 임기 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노태우(12%), 김영삼(7%), 김대중(26%), 노무현(24%), 이명박(25%)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전 지지율(4년 차 4분기)은 12%였다.



■‘0선’ 비호감 후보…사라진 배우자

선거 국면이 자주 요동친 가장 큰 이유는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다. 도덕성과 능력 검증의 범주를 벗어난 거칠고 사리에 어긋난 네거티브 공방에 유권자만 답답했다. 이 후보는 당 경선 때부터 대장동 의혹에 시달렸고 여배우 스캔들 논란, 아들 도박 혐의 논란에 이어 배우자 김혜경 씨 과잉 의전 문제가 뒤따랐다. 윤 후보는 검찰 고소장 사주 의혹, 무속 논란, 배우자 김건희 씨 허위 경력과 주가 조작 의혹, 장모의 경제활동 불법 논란에다 각종 말실수가 적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김만배 녹취록’으로 대장동 역공을 받았다. ‘김건희 리스크’는 선거 중반 최대 변수였다. 허위 경력 등으로 관심을 받던 김 씨 행적은 1월 16일 기자와의 전화녹음이 공중파에 공개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라는 예상과 달리 윤 후보 지지율은 반전 상승했다. ‘배우자 리스크’를 띄우던 이 후보의 경우 오히려 설 명절을 전후해 법인카드 무단 사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악재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정당과 밀접하지 않은 0선 후보의 등장에 선거 캠페인에서는 과거 이해찬, 김종인 같은 정당의 거물급 조력자가 보이지 않았다. 후보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며 상대의 약점만 공략, 국정운영의 비전이나 철학 등은 찾기 어려웠다. 대신 탈모 등 생활밀착형 미세 공약 발표가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개인기 선거는 후보의 ‘어퍼컷 세러머니’나 ‘발차기’를 화제로 만들었다. 후보와 정당과의 괴리는 소위 영남은 보수, 호남은 진보라는 지역 투표의 전통을 희석시켰다.



■이대남 구애 폭발…골 깊어진 젠더 갈등

이번 대선 정국을 달구는 플랫폼은 신문, 방송 등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었다. ‘삼프로 TV’ 인터뷰의 화제성이 대표적이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변수로 작동했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열광하는 2030 남성들이 캐스팅보트를 쥔 듯했다. 특정 후보가 이들에게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결과다. 이는 각 당의 전략이 젊은 남성에게 편중되는 상황을 낳았고, 젠더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철수, 심상정,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가 제3지대 ‘빅3’로 꼽히며 선거 운동을 펼쳤지만, 이번에도 제3지대는 사실상 소멸했다. 안 후보는 윤 후보와, 김 후보는 이 후보와 단일화했다. 심 후보는 “모든 자원을 틀어쥐고 압박과 회유를 일삼는 양당 사이에서 소수당이 살아남고 소신을 지키고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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