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면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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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고쳐서 낸 책이라고 했다. 쉼 없이 책을 고쳤다고 했다. 2004년 첫 책을 낸 이후 18년 만에 네 번째로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가디언)를 낸 김종대(사진)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달 28일 ‘저자와의 만남’에서 그 수정 과정을 “이순신의 진면목을 찾아가는 어리석은 구도자의 여정”이라고 했다. 이순신이 구도의 대상인 것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순신은 완벽한 인간”이라는 거다. 그는 “이순신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자각과 수양을 바탕으로 대(大)인격을 이룬 성자요 군자”라고 했다. 전장(戰場), 해전의 장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신작
성자와 같은 이순신의 인격 조명
“무릇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
우리 스스로 ‘작은 이순신’ 돼야”

그는 2014년 이순신 사업을 시작했다. 부산 서울 여수에서 각각 이순신학교를 설립해 ‘작은 이순신’을 길러내고 있다. 왜 2014년인가. 그해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많은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면서 노량의 바다에서 죽은 이순신을 역사의 기억 속에서 건져올려 오늘에 제시해야겠다고 나섰던 거다. “이순신의 눈은 무엇을 바라봤던가. 조정을 보지 않고 오로지 적진만 봤다. 무릇 장수의 눈은 그러해야 한다. ‘아버지 충의 대상은 누구냐’라는 아들 회의 물음에 이순신은 ‘무릇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위정자와 공직자들이, 세상 사람들이 어떤 가치와 어떤 질문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지 이순신은 묻고 있다는 거였다. 이것이 이순신이 던지는 당대적인 문제 제기다.

한 청중의 물음에서 ‘임진년 4대 대첩’ 얘기가 나왔다. 임진년 4대 대첩은 옥포승첩 당포승첩 한산대첩 부산대첩을 말하는데 저자는 “4개 전투 모두는 우리가 제해권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전투”라며 “이순신이 모두 목숨을 걸었던, 어느 것 하나를 뺄 수 없는 전투”라고 했다. 지역적 연고를 내세워 어느 전투가 우월하게 더 중요하다고 내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였다. 옥포의 승리가 없었다면 당포의 승리가 없고, 당포의 승리가 없었다면 한산대첩이 없고 한산이 없었다면 부산의 승리가 없었다는 거다.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려 있다.

“예를 들면 당포승첩은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4개의 전투로 이뤄져 있다. 그중 이순신은 사천전투에서 왼쪽 어깨에 총탄을 맞아 상처가 매우 심했다. 그때 자칫 총탄이 심장에 맞았더라면 그 이후의 모든 승리는 없었다. 이순신은 모든 전투에 목숨을 걸었다. 모든 전투가 똑같이 중요하다. 다만 표현하자면 제해권 장악의 씨를 뿌린 것이 옥포승첩이고, 그 줄기와 가지를 뻗은 것이 당포해전이요, 꽃이 활짝 피어난 것이 한산대첩이고, 마침내 그 열매를 맺은 것이 부산대첩이라고 할 수는 있다.”

임란, 전쟁, 삶은 죽음과 맞닥뜨려 있을 것이었고 이순신은 생사를 초월해 있었다고 한다. 경상수사 배설은 명량해전 직전에 살려고 도망갔으나 잡혀 참수당해 죽었다.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총알은 이순신의 왼편 심장을 뚫었으나 죽은 이순신이 산 왜적을 무찔렀으며, 그의 삶과 철학이 완성되면서 영웅은 갔으나 성웅이 왔다고 한다. 다른 한 청중이 “수준 낮은 정쟁의 정치인들을 보는 이 시대에 왜 이순신 같은 지도자가 혜성 같이 나타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저자는 답했다. “도산 공원에 가슴 때리는 다음 구절이 쓰인 비가 있다. ‘왜 이 나라에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느냐. 왜 너는 인재가 되지 않으려 하느냐.’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작은 이순신’이 되어야 한다.”

이순신 해전 지도를 보면 17차례 해전 중 명량해전을 빼고 모든 해전이 한려수도 바다에서 치러졌다. 저 바다가 저토록 빼어나게 아름다운 내력을 이순신을 통해 더욱 깊이 알겠다.

글·사진=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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