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대통령직인수법 업그레이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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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새판 짜기, 당선 전부터 체계적 준비 제도화해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0일이면 대한민국은 다시 새 출발선에 서게 된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직 교체는 국가 운영의 새판 짜기에 비견된다.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만큼 국가 운영체제 곳곳에 상당한 긴장과 위기가 동반된다.

국가 전체의 새판 짜기가 시작되는 때에 차기 대통령의 국정 운영 준비를 총괄하는 기구가 바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다. 이번 대선 직후에도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 연착륙을 위한 인수위원회가 설치됐다. 하지만 새 정부 운영을 위한 준비 단계부터 현 정권과 갈등, 의견 충돌로 국가적 에너지가 낭비됐다. 특히 여권 내부가 아닌 여야 간 수평적인 정권 교체일 경우 갈등 수준이 더 높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경우엔 이런 양상이 더 심했다. 앞으로 5년마다 겪어야 할 일이라면 이제는 인수위의 출범과 역량에 대해서도 좀 더 꼼꼼하고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신임 대통령 10일 취임
정권 인수인계 과정 갈등 심각
정부조직 개편도 뒤로 미뤄져
당선인 확정된 이후로 명시
인수위 발족 시기 앞당기고
존속 기간도 더 연장해야
새 정부 국정 연착륙 가능
현 대통령·정부 협조 중요
이에 관한 규정 구체화 필요
국민들 성숙한 인수인계 기대

윤 정권 인수위, 역대 최고의 긴장감

우리나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제13대 노태우 정부의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92년 12월 28일 인수위원회 설치령이 만들어지면서 제도화의 길로 들어섰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2003년 2월 4일 제정됐다. 대통령직 인수인계 업무가 드디어 법률로 규정된 것이다.

법률상 인수위원회는 당선인이 확정된 이후 설치하며, 취임 이후 30일 범위에서 존속할 수 있다. 이 기간에 현 정부의 국정 파악과 승계 여부 결정, 새 정부의 국정 과제 설정, 정부조직 개편 등 새 정부의 국정 운영 연착륙을 위한 업무를 진행한다. 말은 이처럼 간단하지만, 한 나라의 행정 단계에서 최고 수준의 업무인 만큼 현 정부와 신구 권력 간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역대 인수위원회 상황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제20대 대선은 진영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했던 선거로, 결과도 박빙으로 결정 나는 바람에 대통령직 인수를 두고도 신구 권력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여권 안에서의 대통령직 교체는 권력 승계의 성격이 강해 비교적 갈등 요소가 적었지만, 이번처럼 여야 간 수평적 정권 교체의 경우 갈등은 더욱 두드러진다. 윤 당선인이 당선 확정 이후 현직 대통령과 만남까지 걸린 기간이 역대 가장 길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다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예비비 확보 등 갈등과 주요 기관장의 인사권 다툼까지 겹치면서 새 정부의 국정 연착륙에 대한 우려마저 일었다.

윤 당선인의 국정 기조를 집행할 정부조직 개편 역시 현재의 국회 역학 관계를 감안해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이마저 향후 실제 진행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새 정부의 온전한 출범이 지장을 받는다면 이는 정파 간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국정 준비는 모두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처리되어야 할 업무이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몇 차례의 정권 인수인계 과정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이와 관련해 미비한 점이 적지 않다. 이는 새 정권이 출범하기만 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처럼 신구 권력 간 불필요한 갈등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출범과 역할 등 인수위원회의 좌표 재설정을 생각해봐야 한다.



인수위 조기 출범 고려할 만

한발 빠른 준비가 일의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여유를 두고 좀 더 일찍 준비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은 국가 운영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인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직 인수인계 작업은 당선인이 확정된 이후의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하지만 대통령직의 중차대함을 고려한다면 이젠 바꿀 필요가 있다. 대통령직에 대한 인식과 학습을 통한 새 정부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자 시기부터 사전 준비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선거운동 때부터 대통령직을 염두에 두고 큰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다. 미국이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다. 2010년 선거 전 미국은 대통령직 인수법을 통해 자격 있는 후보자들에게 대통령직 인수에 대한 사전 준비와 조기 계획을 공식화했다.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과 기능에 관한 연구, 한국행정연구원)

당선 이후의 인수위 조직 구조와 인선, 정책 방향을 후보자 때부터 미리 설계해 실제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국정 준비 전환을 재빨리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수위 발족 시기를 ‘당선인이 확정된 이후’라고 명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시기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당선 후 인수위 설치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취임 이후 30일 이내인 존속 기한도 60일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은 사실상 백서 준비로 활용하는 취임 이후 30일을 60일로 늘림으로써 새 정부의 국정 안착을 뒷받침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개편·인사 등 규정 필요

윤석열 당선인의 경우에서 보듯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과 인사권을 둘러싼 문제는 신구 권력 간 갈등의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갈수록 인수위의 핵심 업무로 부상하고 있는 정부조직 개편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는 물론 국회 통과도 거쳐야 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번 인수위에서도 정부조직 개편을 시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다음 기회로 미룬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검증도 높아진 국민의 기대치에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양상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과 동시에 자신이 구상한 새 정부 체제로 국정을 수행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예전에도 비슷했지만, 그 정도가 점점 더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의욕이 가장 왕성한 취임 초기, 국정 운영의 동력과 흐름이 끊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나 국민을 위해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정 에너지 낭비도 심하다.

대통령직 인수인계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과 정부의 협조가 매우 중요한데, 이에 관한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은 것도 과제다. 법률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업무 지원을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 안위에 관계된 현안이나 보안이 필요한 중요 사안, 인사권 등 현직과 차기 대통령이 서로 협력해야 할 필수 항목에 대한 체크 리스트라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국정이 한 정파의 소유물이 아닌 이상 그 이양 과정은 인수인계자가 누구라도 최대한 원활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게 국민이 바라는 것이고, 국민에 대한 도리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정권 교체의 경험도 적잖이 쌓였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한 대통령직 인수인계를 시도할 때가 됐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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