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정신 공유… 우크라이나 편지 제안 수락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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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렬 에스페란토협회 부산 편집장

전쟁이 온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요즘, 에스페란토로 쓰인 편지 두 통이 지난달 <부산일보>로 날아들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한국인의 지지와 연대를 간절히 요청한 우크라이나, 피붙이를 보듬듯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포용한 폴란드에서 날아든 편지였다. ‘평화의 언어’ ‘평등의 언어’답게, 에스페란토는 전쟁 속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편지들은 장정렬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부 회보 ‘TERanidO(테라니도)’ 편집장(전 동부산대 외래교수)의 번역을 거쳐 <부산일보> 독자들을 만났다.

지난달 부산일보에 폴란드서 편지 와
‘한국인 연대 요청’ 번역 독자에 알려
11월 부산서 에스페란토 대회 예정

“에스페란토가 제 삶입니다.” 장 편집장은 42년 전 부산대 재학 시절 에스페란토를 만났고, 지금까지 20권 이상의 에스페란토 번역서를 펴냈다. 무슨 얘기를 꺼내도 ‘에스페란토’로 귀결되는 걸 보니, 그의 삶 마디마디마다에는 어김없이 ‘에스페란토’가 있었을 것이다. 전 세계를 돌며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를 쓰는 사람)를 만났으며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아동문학 ‘올해의 책’ 선정위원이기도 한 그는, 수십 년간 인연을 맺은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편지 제안을 먼저 했다.

“국내에서는 에스페란토 사용자가 많지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아주 많아요. 그들은 같은 언어와 정신을 공유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희가 그 나라에 가면 반겨주고, 자기 나라를 소개해주고, 때론 숙식까지 제공해줘요. 반대로 저희도 그렇게 하고요. 편지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안과 의사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가 9개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내 창안한 언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만 있다면 몰이해에서 비롯된 불화가 사라지고 분쟁이 종식될 수 있다는 믿음 속에 만들어졌다. 폴란드에서 창안된 언어이다 보니 폴란드에서는 이 언어를 일종의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동유럽에 사용자가 많다.

장 편집장이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에는 대학마다 에스페란토 동아리가 있어 보급이 활발했다.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가는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부도 이때 결성이 됐다. 테라니도라는 정기간행물도 1981년부터 발행되고 있다. “그땐 에스페란토로 편지를 쓰며 여행을 꿈꿨는데 1989년 여행 자유화가 이뤄지고, 영어로 된 소통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에스페란토의 인기가 다소 시들해졌어요.”

하지만 요즘도 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 에스페란토를 택하기도 하고, 중고등학교에서 자유학기제나 ‘에스페란토와 국제 여행’ 과목으로 수업에서 다루기도 한다. 대문호 톨스토이가 2시간 만에 배워 술술 읽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문법이 규칙적이고 발음이 쉬워 배우기 쉬운 언어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 처음 보급된 건 1920년 김억 선생에 의해서였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로, 자멘호프의 나라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과 유사했다. 협회 부산지부는 최근 박차정 열사가 중국에서 ‘임철애’라는 필명으로 쓴 에스페란토 글을 찾아내 이를 분석하고 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힘을 모으기가 쉬웠고 자신감이 넘쳐 신의 자리까지 넘봤다.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올리려다 결국 신의 분노를 샀다. 신은 인간들이 서로 말이 안 통하도록 언어를 뒤섞었다.” 성경이 전하는 바벨탑의 이야기처럼, 많은 사람이 같은 언어를 쓰며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에스페란티스토들. 한국에스페란토협회는 올해 11월 부산에서 ‘제10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에스페란토 대회’를 연다. 3년마다 개최되는 이 행사에 500여 명의 세계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모일 예정이다.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사진=정대현 기자 j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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