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 밤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소정 소설가

그 밤에 나는 살아있었다. 사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게 이처럼 가까운 죽음은 처음이었다. 할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이미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가 좀 더 버텨주리라 믿었다. 늘 그런 분이셨으니까. 지난 몇 년간 몇 번의 수술에서도 그랬고 오랜 기간 혼자서 헤쳐온 삶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에 할머니의 마지막 날들은 짧은 면회들로 기억된다. 지난 설에는 아이들과 함께 면회실에서 휠체어를 탄 할머니를 만났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 다른 이들의 소식도 물었다. 나는 잘 모르면서 다들 잘 있다고 했다. 요양원에 고립된 할머니보다는 다들 잘 있을 테니까. 할머니는 자신도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그랬던 건 아닐까 의심부터 들었다.



운구차가 오기 전까지 아직은 따뜻한 할머니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아이에게 하듯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할머니는 조용히 몸을 맡겼다. 살아있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과 나누는 입맞춤을 나는 할머니와는 해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를 만지고 냄새 맡고 살을 비벼 본 적이 없었다. 곁을 주지 않아서인 것도 같고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자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아쉬웠다.

운구차가 오고 할머니의 몸을 꽁꽁 묶었다. 묶은 몸을 이동식 침대에 눕히고 안전벨트를 좼다. 나는 그만! 너무 세게 묶지는 말라고 소리쳤다. 할머니가 숨을 못 쉴 것 같아서. 이동하면서 할머니 흔들리지 마시라고, 그분은 그렇게 말했다.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나와 같은 말이라는 걸 알았다. 평생 혼자였던 할머니를 운구차에 태워 또다시 혼자 보내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너무 고생했고 이제 편히 쉴 수 있다고 사랑한다고 얼굴을 가린 할머니의 귀에 속삭였다. 사람의 신체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기능을 하는 것이 귀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할머니가 다 들었다고 믿는다.

마지막 인사에서 꽃으로 둘러싸인 할머니는 예뻤다. 내가 본 모습 중 가장 편안해 보였다. 손님은 많지 않아서 우리는 때가 되면 주문한 음식을 배부르게 나눠 먹었다. 오랜만에 할머니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넘치게 나눴다. 나는 새벽까지 잠이 안 왔다. 나를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사라졌다. 이제 늙은 고아가 된 아빠가 내 옆에서 밤을 새웠다. 너무 불쌍해, 내 말에 불쌍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노, 우리도 가면 다 불쌍하지, 상주 방에 누운 엄마가 말했다. 이쪽과 저쪽. 죽음의 가벽이 아주 얇게 느껴지던 그 밤에는 모든 게 아쉽고 아팠다. 마지막에는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만 남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말들은 모두 뒤늦은 말들이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보상처럼 그 말들이 쏟아졌더라면 할머니의 인생은 좀 더 좋았을까. 이 밤 우리의 서러움은 좀 더 낮은 파고로 차올랐을까.

어떤 영화감독은 가족이란 남들이 안 보면 몰래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다. 나는 그 마음도 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운다. 그건 내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울면 아이들이 와서 뽀뽀해준다. 앞으로도 나는 자주 미워하고 원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자주 사랑하고 미안하고 고마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 너무 늦지 않게 닿길 바라본다. 5월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가정의 달인 것처럼.

고마웠습니다. 당신이 있어 내 인생이 늘 따뜻했습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