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울경의 신석기시대와 메가시티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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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문화부장

부산과 울산, 경남 3개 시·도를 초광역권으로 묶는 부울경특별연합이 지난달 출범했다. 거주 인구 800만 명에 달하는 부울경 메가시티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이에 발맞춰 부울경 메가시티화를 위한 문화예술계의 모임이 발족한 데 이어 문화예술기관들도 초광역권을 아우르는 연대를 모색 중이다. 부울경 초광역 메가시티를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축이 한층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메가시티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부울경을 아우를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고, 800만 시민들에게 자긍심과 동질성을 부여하는 역사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이다. 메가시티가 도시 간의 혼인이라면, 사랑의 역사가 없는 형식적 결합은 파국을 맞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울경의 역사엔 크고 작은 애증이 교차한다. 부족국가 등을 거친 이후에도 신라와 백제, 가야 등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다툼을 벌였다. 고려와 조선 때도 부울경 내에선 문화적 중심과 변방이라는 논리가 작용하면서 진정한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

부울경 메가시티 시급한 과제는
초광역권 아우를 도시 정체성 확보

신석기시대 강력한 해양문화 가졌던
동남권은 원조 메가시티였을지도

세계적 바위그림유적문화권 등 지정
800만 자긍심 줄 스토리 발굴해야

하지만 역사의 시계를 기원전 1만여 년부터 부족국가가 생겨난 청동기시대 전까지로 돌려보면 부울경의 정체성에 동질성을 부여할 수 있는 스토리를 발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울산 반구대암각화, 부산 동삼동과 경남 등 부울경에 산재한 패총 등 수많은 선사유적은 신석기시대의 부울경이 이미 해양을 매개로 한 초광역권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논란은 있지만 출토된 유물 등을 종합할 때 신석기시대 한반도 남부는 동북지방, 서북지방, 중·서부지방, 중부 동해지방, 남해안지방 등 5개 권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남해안지방은 나머지 4개 권역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지녔다. 바다에 접해 살았던 이곳의 거주민들은 농업보다는 바다를 생계 기반으로 삼으며 신석기시대 해양문화시대를 주도했다. 남해안지방은 현재로 보면 부산 울산 경남 전남 등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지를 비롯해 암남동, 영선동 다대포패총과 울산 신암리, 경남 진해 안골포,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하동 목도 여수 안도 등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패총과 주거 유적 등은 신석기시대 남해안지방이라는 초광역권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해에 인접하면서도 동해에 접한 울산을 두고 이설이 있지만 남해안지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다. 즉, 울산은 남해안지방에 속한 상태에서 중부 동해지방 등과도 교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울산 반구대암각화 사슴 그림과 부산 동삼동 패총 토기에 그려진 사슴 그림이 양식상 동일하다고 한다. 울산 대곡천 거주집단이 반구대에 고래 사냥 장면을 담은 암각화를 새긴 것과 관련해 동삼동 패총 신석기 문화층위에서도 다양한 고래 뼈들이 대량 출토됐다. 이 사슴 그림과 고래 뼈 등을 감안할 때 부울경은 신석기시대부터 같은 문화를 가진 동일 권역에 속했다는 추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반구대암각화와 동삼동 패총 등 신석기시대 다양한 유물들은 당시 한반도 남부와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해양문화 중심지가 남해안지방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미개한 원시인일 것이라는 오해와 달리 동삼동 패총 등을 남긴 신석기인들이 일본과 서해안, 내륙 집단 등과 조개 팔찌, 흑요석 등을 뱃길을 통해 거래한 강력한 해양 문화를 가졌다는 증거는 이미 곳곳에서 발견됐다. 동남권의 신석기는 진정한 ‘해양문화시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들도 이어진다. 결국 부울경은 신석기시대부터 바다를 매개로 함께 교류하면서 동질적 문화를 가졌던 메가시티였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 부울경 메가시티의 정체성을 신석기 시대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는 원조 메가시티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부울경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반구대암각화를 비롯해 부산 복천동고분 출토 암각화, 경남 함안 도항리 유적, 밀양 살내 유적과 의령 마쌍리 유적 출토 암각화, 사천 본촌리 유적 출토 암각화, 남해 양아리 서불과차 암각문 유적 등 풍부한 암각화 유산을 갖고 있다. 선사 유적도 많다. 반구대암각화를 필두로 부울경 전체를 세계적인 바위그림유적문화권, 해양선사유적문화권으로 묶어 초광역권 문화, 관광, 컨벤션 산업 활성화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동남권의 문화, 경제적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단순한 행정적인 결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울경 문화권을 하나로 엮어내는 고도의 역사 복원과 발굴, 스토리텔링 작업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한다. 부울경의 잊힌 정체성을 되찾아 800만 명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비로소 진정한 메가시티가 탄생한다는 생각이다.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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